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12:53:43

이민진(작가)

<colbgcolor=#4f9194><colcolor=#fff> 이민진
Min Jin Lee
파일:이민진.jpg
출생 1968년 11월 11일 ([age(1968-11-11)]세)
서울특별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배우자 크리스토퍼 더피
학력 브롱스 과학고등학교 (졸업)
예일 대학교 (역사학 / B.A )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 (법학 / J.D)
대표작 파친코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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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다. 2017년에 출간한 소설 파친코로 유명하다.

2. 생애

1968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1976년 미국 뉴욕으로 부모님을 따라 이민했다. 아버지는 함경남도 원산시 출신의 실향민으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연회에서 아버지가 흥남 철수로 추정되는 피란민 출신이라고 밝혔다.[1][2] 이민진의 가족은 이민을 가기 전에도 이미 중산층 정도의, 가난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었고, 이민진의 아버지 이부춘씨는 피난 후에도 대한민국 기업인이 되어 도쿄에서 일한적까지 있을 만큼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졌다. 그러나 이부춘씨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계속 가지고 있었고 전쟁으로 인해 자신이 겪었던 슬픔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민진 가족은 먼저 미국에 자리를 잡은 친척의 도움으로 이민해서 뉴욕 주 퀸스에 정착했다.

1976년,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난 이민진은 미국에 적응하고 뉴요커로 살면서 한국어를 잊어버렸지만[3], 예일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공부할 때 일본에서 온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재일교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제2의 고향 뉴욕에서 기업 변호사가 되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B형 간염 보균자이다보니 점점 간이 나빠져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 세미나나 각종 문학단체에서 주최하는 작가 수업들을 닥치는 대로 들었다고 한다. 간염은 35세에야 완치되었다.

2004년부터 몇개의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2008년 첫 장편소설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을 발표했다. 이 책으로 여러 상을 수상해 이민진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그후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을 따라 약 4년간 일본에서 생활을 했는데 이민진은 한국어도 거의 말하지 못하는 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핏줄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차별을 당한 경험이 여러번 있다고 한다.# 이 일본 생활 도중 본격적으로 재일교포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엄청난 수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2017년 두 번째 장편소설인 "파친코"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발간되자마자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3. 여담

  • 배우 김혜은이 외사촌 동생이다. 이민진 작가 어머니 남동생의 딸. 김혜은도 이민진도 부산 쪽에 연고가 있으며 파친코 소설의 첫 배경도 부산의 영도에 있는 하숙집이다.
  • 이민진 작가는 과거 윤여정미나리로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된것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었는데 그 즈음에 애플TV+에서 파친코를 영상화하며 제1순위로 이미 윤여정을 캐스팅한 상태였다고 한다.[4] 결론적으로는 윤여정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애플TV+측이 대단한 캐스팅을 해낸 셈이 되었다. [5]
  • 윌라 오디오북 모델이다.[6]


[1] 당시 16세 소년인 아버지가 형과 함께 배를 타고 북한 땅에서 부산으로 왔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원산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1950년 12월 8일 원산 철수 당시 피란민 7,000여 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이동한 레인 빅토리호를 타고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원산 철수는 크리스마스 전후로 이루어진 흥남 철수와는 별개로 진행된 철수 작전이다.[2] 아버지는 어머니(이민진의 친할머니)를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산가족이 되어 영영 볼 수 없었다고 한다.[3] 타인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게 싫어서 미국에서는 한국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4] 여기에는 또 다른 한국계인 총괄프로듀서 수 휴의 역할이 있었다.[5] 그러나 파친코가 공개된 후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드라마팬들이 실망해서 이민진 작가를 언팔로우하기도 했다.[6] 지상파에서도 온에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