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2 17:39:19

윤형중(신부)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윤형중 마태오
세례명 마태오
출생 1903년
충청북도 진천
사망 1979년 (향년 76세)
사망지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윤자호 (증조부)
학력 용산 예수 성심 신학교 (졸업)
종교 가톨릭
직업 신부
소속 천주교 서울대교구

1. 개요2. 생애3. 저서

[clearfix]

1. 개요

윤형중 마태오 신부는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부이다. 한국 가톨릭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2. 생애

1903년 4월 29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용진동에서 병인년 순교자인 윤자호의 증손으로 태어났으며 6세 때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하였다. 안성 안법학교 졸업 이후 용산 예수 성심 신학교를 졸업, 1930년 10월 26일 사제품을 받았다. 약현성당 보좌신부를 거쳐 교구 출판부로 전임, 장면총리 등과 함께 1933년 가톨릭청년지를 창간하였으며 편집장에 취임하였다. 1937년에는 경향잡지 편집장에 취임하여 많은 호교론을 펼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순교자 현양회 중앙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경향신문 부사장, 가회동성당 초대 주임신부를 맡았으며 1954년에는 명동성당에서 예비자 교리반을 개강하여 많은 영세자를 내기도 했다. 1955년 육당 최남선 베드로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1956년부터 1957년까지는 무교회주의자 함석헌 등과 함께 종교 논쟁을 벌였다. 1966년 은퇴하였으며 1979년 선종하였다.

3. 저서

  • 상해천주교요리 : 상 중 하 세권으로 되어 있으며 발매 당시 가장 정평있고 탁월한 가톨릭 교리서라고 인정받았다. 다만, 이 교리서는 시대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전에 집필되었기 때문에, 트리엔트 공의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오늘날과 약간 다른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