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23 23:04:47

유대균(강원 교육자)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유대균
劉大均 | Yoo Dae-gyoun
파일:프로필_유대균3.jpg
출생 1960년
강원도 정선
학력 춘천교육대학교 (전문학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 석사강원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 박사[1])
경력 강릉초,경포대초,정선초,증산초 교사
홍콩한국국제학교 교사
반곡초등학교 교장
화촌초등학교 교장
강원도교육청 장학사, 교육연구사
국사편찬위원회 교육연구관
교육부 장학관, 교육연구관
교육부 방과후학교지원과장,동북아역사대책팀장, 역사교육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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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장학생이었던 촌놈 ==
6~70년대 농촌은 대부분 가난했다. 우리집도 아침 이슬을 맞으며 앞산 뜨락에서 오이를 따다 씻어놓고 등교를 해야 했다. 하교 후에도 소꼴이나 꾸정물을 나르는 일이 일상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도 옥수수 밥이 주식이었다. 쌀밥 구경은 명절이어야만 가능했다. 부친은 새마을 지도자였다. 동네 일에 진심이었다. 나도 공부는 곧잘 했다. 그 덕분에 새마을 지도자 장학생이 되었다. 중학생때부터 3년간 받았다.

==교사를 꿈꾼 학창시절 ==
중학교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특별활동 부서가 참 많았다. 친구들은 특활부서에서 실력을 키웠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그 역량이나 실력이 월등하였다. 이로인해 초등학교 시절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의 자질을 갖추려는 노력을 했다. 우선 학교 도서관에 있던 이백권 한질의 동화책을 읽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톰 소요의 모험, 소공녀, 소공자 등등등. 고등학교 시절도 변함없었다 교육학 책을 읽었다. 루소의 에밀, 존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 브루너의 교육과정, 오천석의 교사론 등등등.
남자가 교사가 되려면 중등교사가 되는게 낫지 초등 교사가 되려고 하느냐라며 핀잔도 들었다. 그래서 사범대학 원서를 썼다. 그러나 초등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범대 원서를 찢어버리고 교육대학 원서를 썼다.

==행복했던 교사시절과 해외근무 경험==
교육대학 성적이 발령 순서였다. 일번으로 강릉에 배정 받았다. 첫 근무지는 경포대 초등학교였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새 학교 준공과 더불어 학부모와 함께 향나무 생울타리 2200주를 심었다. 강릉시 육상대회 종합우승으로 경포 호숫가를 가두 행진도 하고, 글짓기 지도로 율곡제 백일장에서 장원도 하였다. 과학 전람회에 출연하여 전국대회 입상도 하고, 창작 동요로 춘천 KBS의 출연을 하기도 하였다. 연극도 5번이나 무대에 올렸다. 강릉 초등학교 정원에는 근무한 기념으로 향나무 한 그루를 심기도 하였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라는 급훈으로 학생들이 지역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되길 바랬다. 참 행복하고 즐거운 교사시절이었다.

1991년 교육부의 선발로 홍콩한국국제학교에 3년간 근무하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해외 각국의 교육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국제학교와 일본인 학교를 견학하면서 세계 각나라의 교육 제도에 대한 견식을 넓혔다. 유럽을 베낭 여행하면서 실질적인 교육 제도를 견학하고 경험하기도 했다.

==18년간 교육전문직으로 교육정책을 수립==
해외근무를 마무리하고, 강원도로 돌아왔다.교육부 지정 연구학교 연구부장 시절 장학사 시험에 응시하라는 권유가 있었다. 교사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세 번이나 거절했지만 결국 강권에 의해 응시하게 되었다. 면접 시험 과정에서 '너무 젊어서 안돼' 하는 핀잔도 들었지만 결국 교육전문직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교육 전문직으로 수업 개선에 주력하여 학교 현장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연구 활동에도 정진하여 전통문화 계승 연구, 연구학교 지도 방안 등에 독보적인 연구 성과로 현장연구의 권위로 여겨지는 푸른기장을 2번이나 받기도 하였다.

교육부 전문직 공채에 시도 전문직을 대상으로 공채가 있었다. 교육평가 전공으로 합격하였다. 학교평가, 학업성취도 평가를 비롯한 국가의 교육평가 정책은 거의 다 맡았다. 또한, 교육 정보공시제도는 법령과 시스템, 공시양식 개발 등 시작부터 안착까지 주도적으로 추진하였다. 2009 개정 교육 과정에 따른 교과서 정책을 총괄하면서 초등 봄, 여름등의 주제별 교과서 도입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초중등교육 정책, 교육 복지 정책, 교과서 교육과정 정책, 방과후 정책, 초등 돌봄 정책, 동북아 역사 대책 등을 담당하면서 외교부와 문체부 행안부와 보건 복지부 등과 함께 국내외의 교육 정책에 깊게 관여하였다.

==한 명 한명 소중하게 여기는 학교장 시절==
18년간의 교육 전문직을 마무리하고, 강원도 원주에서 학교장으로 근무했다. 한 명 한 명 소중히 여겨 학생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교사에게는 보람과 긍지를, 학부모에게는 신뢰와 만족을 주는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교육가족 구성원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여 미래 지향적이고 창의 융합 교육의 활성화를 통해 교육부장관 학교 표창을 받기도 하였고, 교사들도 한해 14명이 장관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눈높이 교육상, 동곡상, korea 혁신 대상 등을 받았다..
교직 생활 동안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등의 국제 봉사활동과 자율방범대 같은 지역사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강원도 교육감도전과 낙선 ==
강원교육이 그동안 많이 낙후되고 신뢰 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변모한 것을 느꼈다. 이에 강원교육을 다시 살리고, 강원교육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새로운 소명이자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제8회 전국 동시 선거 강원도교육감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하였다.

==교육사랑 플랫폼 설립과 후진 양성 ==
낙선한 후 학교나 선생님들을 돕기 위한 봉사단체로 교육사랑 플랫폼을 설립하였다. 각종 교육 공모에 참여하기 위한 교육 계획서 등의 컨설팅, 학교에서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대체강사 수급 등 학교 교육과 관계되는 일반적인 일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강원대, 한림대, 춘천교대, 강릉원주대, 한림성심대 등에서 후진들을 가르치기도 하였고, 노인종합복지센터, 무료급식,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미래세대에게 도움이 되고자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위해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만나며 교육에 대한 의견도 청취하고
있다.



[1] 박사 학위 논문 : 연구학교 평가모형 개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