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 월터 데버루 Walter Devereux |
| 출생 | 1432년경 |
| 잉글랜드 왕국 헤리퍼드셔 웨블리 | |
| 사망 | 1485년 8월 22일 (향년 52~53세) |
| 잉글랜드 왕국 레스터셔 보스워스 | |
| 아버지 | 월터 데버루 |
| 어머니 | 엘리자베스 머버리 |
| 배우자 | 앤 드 페러스, 조앤 |
| 자녀 | 로버트, 존, 엘리자베스, 앤, 이사벨라, 리처드, 토머스 |
| 직위 | 제8대 차틀리의 페러스 남작 |
1. 개요
잉글랜드 왕국 귀족, 군인. 장미 전쟁 시기 요크 왕조 편에 섰으며, 보스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했다.2. 생애
데버루 가문은 프랑스 출신의 오래된 잉글랜드 귀족 집안으로, 그들의 영지는 헤리퍼드셔, 레스터셔, 링컨셔에 걸쳐 광대한 면적을 차지했다. 월터는 헤리퍼드셔 웨블리의 기사 월터 데버루와 사우스 웽리스의 대법원장 존 머버리의 딸인 엘리자베스 머버리의 아들이자 상속인이었다. 1446년 제7대 차틀리의 페러스 남작 윌리엄 드 페러스의 외동딸이자 상속녀인 앤 드 페러스와 결혼했으며, 아버지로부터 링컨셔에 있는 가족 영지를 양도받았다. 장인인 윌리엄 드 페러스가 사망한 뒤, 그의 땅 대부분은 미망인에게 종신 소유권으로 넘어갔지만 일부는 그의 땅에게 넘어갔고, 그는 아내의 권리를 바탕으로 제8대 차틀리의 페러스 남작이 되었다. 145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그는 나머지 가족 영지를 상속받았다.이 무렵 장미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요크 왕조를 지지했다. 1459년 러드퍼드 다리 전투에서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의 수행원이었지만, 요크 공작이 패배하고 아일랜드 영지로 피신하자 헨리 6세에게 귀순했다. 헨리 6세는 그의 목숨을 살려줬지만, 영지는 박탈했다. 1년 후, 월터는 500 마크에 몰수되었던 영지를 재구입했다. 1460년 요크 공작이 잉글랜드로 돌아오자 그를 다시 지지했고, 요크 공작이 승리한 뒤 잉글랜드의 전권을 쥔 후 완전히 사면받았다. 같은 해 하원에서 헤리퍼드셔 의원으로 참석했다.
1460년 12월 30일, 요크 공작 리처드가 웨이크필드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는 요크 공작의 장남인 마치 백작 에드워드에게 합류했고, 마치 백작이 2월 2일 모티머스 크로스 전투에서 랭커스터군을 격파할 때 참여했다. 그 후 마치 백작과 함께 런던으로 진군해 3월 2일 입성했고, 3월 3일 의회에 출석해 마치 백작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4세로 추대했다. 1461년 3월 29일 토우턴 전투에 참여해 결정적인 승리에 공헌한 뒤 에드워드 4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후 웨일스에서 랭커스터파의 준동을 제압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헤리퍼드셔와 글로스터셔의 재판관으로 임명되어 평생 그 직임을 맡았다.
에드워드 4세는 그의 충성심에 대한 보상으로 차틀리의 페러스 남작이라는 작위를 1461년 7월 26일에 정식으로 수여하고, 여러 개의 보조금과 토지 소유권을 수여했다. 또한 여러 성의 보안관 및 집사, 카나번의 보안관, 스노덴의 수석 산림 관리관 직위를 수여했다. 1462년 12대 옥스퍼드 백작 존 드 베레가 에드워드 4세를 축출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고발하여 그가 처형되는 데 일조했다. 1471년 바넷 전투와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에드워드 4세를 위해 싸워서 랭커스터파를 궤멸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왕과 함께 런던에 다시 입성했고, 1471년 7월 3일 의회에서 웨일스 공 에드워드를 왕위 계승자로 받들겠다고 선서한 영주들 중 한 명이었다. 1472년, 월터는 가터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1473년, 월터는 웨일스 공 에드워드의 가정교사 중 한 명으로 발탁되었다. 1475년 에드워드 4세의 프랑스 원정에 참여했고, 1478년에는 클래런스 공작 조지 플랜태저넷의 재판을 담당해 반역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한 뒤, 그의 동생인 리처드 3세가 에드워드 5세를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했다. 일부 사료에 따르면, 월터는 이에 반발하여 버킹엄 공작의 반란에 가담했지만, 나중에 리처드 3세와 화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병하지 않다. 1485년 8월 헨리 튜더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고 웨일스 해안에 상륙한 뒤 왕위에 도전하자, 그는 리처드 3세 편을 들었다. 그 해 8월 22일 보스워스 전투에 참여해 기병 20명과 궁수 200명으로 구성된 분견대를 이끌었지만, 리처드 3세가 패배하는 걸 막지 못하고 전사했다.
3. 가족
- 앤 드 페러스(1438 ~ 1469): 제7대 차틀리의 페러스 남작 윌리엄 드 페러스의 딸. 제8대 차틀리의 페러스 여남작.
- 존 드 데버루(1464 ~ 1501): 제9대 차틀리의 페러스 남작.
- 엘리자스 데버루: 리처드 코벳 경과 초혼, 토머스 레이튼 경과 재혼.
- 앤 데버루: 토머스 티렐 경의 부인.
- 이사벨라 데버루: 제임스 바스커빌 경의 부인.
- 리처드 데버루: 요절.
- 토머스 데버루: 요절.
- 조앤(? ~ 1522): 토머스 일룸의 미망인. 월터 데버루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지 못했고, 월터가 사망한 뒤 토머스 본, 에드워드 블런트, 토머스 포인츠와 잇달아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