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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FC No. 39 | |
'''와타나베 카즈마 (渡邉 千真, WATANABE Kazuma) | |
출생 | 1986년 8월 10일 ([age(1986-08-10)]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나가사키 현 운젠 시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신체 | 182cm, 78kg[1] |
등번호 | 39번 |
소속 구단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9~2011) FC 도쿄 (2012~2014) 비셀 고베 (2015~2018) 감바 오사카 (2018~2021) 요코하마 FC (2021~ ) |
국가대표 | 1경기 |
학력 | 쿠니미 시립고등학교 와세다대학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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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축구 선수.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2. 선수경력
2.1. 프로 입단 이전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이미 축구를 시작한 형 와타나베 다이고의 영향을 받아 고향 나가사키 현의 지역 축구 클럽인 쿠니미 FC[2]의 유소년팀에 입단하며 축구를 시작했다. 2002년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축구부에서 1학년 시절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2학년 시절에는 전국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모교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3학년부터는 본래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선배들이 은퇴한 자리를 대신해 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 3학년 고교 마지막 대회에서 정확도 높은 플레이를 보이며 모교를 전국대회 4강까지 이끌었다.2005년 와세다대학으로 진학하여 축구부에 입부했고 1학년때부터 공식전에 출전을 하더니 2학년때부터는 주전 자리를 먹었다. 주전 자리를 차지한 이후 관동 지역 대학 축구 리그에서 2년 연속 득점왕을 획득하는 등 대활약을 한다. 이때 본인이 기록한 62시합 37득점은 당시 리그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이라고 한다. 대학 축구 내에서는 '천재' 혹은 '괴물'로 불렸고, 대학 4학년때부터 이미 수많은 프로 클럽들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2.2. 요코하마 F. 마리노스
많은 클럽들의 오퍼가 있었지만, 특히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당시 감독이던 키무라 코키치 감독이 "포지션 비워두고 기다리고 있다" 며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고, 결국 와세다대학 졸업후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프로 계약을 맺게된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등번호 9번을 받았다.2.2.1. 2009 시즌
괴물 신인의 등장시즌 개막전부터 공격수로 선발 기용되었고, 개막전 시작 3분만에 프로 첫득점을 기록한다. 이후로도 시즌내내 팀의 골게터로 활약하며 J리그 역사상 두번째로 데뷔 시즌에 리그 두자리 수 득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시즌 막판 리그 32라운드 비셀 고베와의 경기에서 시즌 13호골을 성공시키며 신인최다득점기록을 갈아치웠다. 10월 천황배 2차전, 고향팀인 V-바렌 나가사키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후 첫 해트트릭까지 달성했다. 최종 성적은 리그와 컵대회를 합쳐 45경기 출장 21득점으로 시즌 종료후 J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2.2.2. 2010 시즌
데뷔 시즌의 대활약에도 감독이 바뀌면서 출장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새롭게 바뀐 감독이 요구하는 빠른 공수 전환과 이타적인 플레이 요구가 와타나베 카즈마의 스타일과 맞지 않아서라고 한다. 결국 시즌 최종성적은 32경기 출장 9골. 팀내 최다득점자였지만 여론으로부터 기대받았던 2년 연속 두자리수 득점에는 실패했다.2.2.3. 2011 시즌
40경기에 출장하며 10득점하며 다시 시즌 두자리수 득점에 성공했다. 시즌 종료후, 비셀 고베, 우라와 레즈, FC 도쿄등 J리그의 여러 클럽으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고, 새로운 감독과의 마찰등의 영향으로 요코하마와의 계약 갱신을 거절했다.2.3. FC 도쿄
2012년 1월 6일 FC 도쿄로 완전 이적이 결정됐다.2.3.1. 2012 시즌
시즌 초반부터 치열한 포지션 경쟁으로 그렇게 많은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프로 데뷔후 처음으로 참가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원톱으로 선발 기용되어 조별리그에서 3골을 기록하며 팀이 조2위로 그룹 스테이지를 통과하는것에 기여했다. J리그 12라운드 사간 토스전에서는 본인의 J리그 커리어 첫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시즌 최종성적은 32경기 8득점2.3.2. 2013 시즌
사우스햄튼 FC에서 임대로 들어온 이충성과의 포지션 경쟁을 이겨내고 개막전 선발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 원톱 경험을 쌓아서인지 포스트 플레이와 위치 선정능력이 향상된 덕분에 득점력이 크게 좋아졌고, 리그 두자리수 득점에 성공했다. J리그 19라운드 오이타 트리니타전에서 리그 14호골을 넣으며 본인의 커리어 하이 기록을 경신했다. 최종성적은 42경기 19득점2.3.3. 2014 시즌
팀 전술이 2톱과 3톱의 병행하는 식으로 바뀌면서 주로 윙포워드로 기용되었다. 포지션 변경의 영향인지 이전보다 부진한 폼을 보였고, 무토 요시노리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주전의 자리에서 서서히 밀려났다. 최종 성적은 33경기 4득점으로 FC 도쿄 이적 이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2.4. 비셀 고베
FC 도쿄와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2015년 1월 비셀 고베로의 완전 이적이 성사됐다.2.4.1. 2015 시즌
시즌 전반기는 중앙 공격수 자리에 로테이션으로 기용됐지만, 부진한 폼이 계속되며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후반기에는 새롭게 합류한 브라질 용병 레안드로가 중앙 공격수로 자리 잡았고 와타나베 카즈마는 2선으로 주로 기용되었다. 10월 몬테디오 야마가타와의 리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득점력이 살아났고, 결국 리그 두자리수 득점까지 기록하며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다. 리그컵에서는 8경기에서 7득점을 하며 팀을 4강까지 끌어올렸다. 대회 종료후 리그컵 득점왕을 수상했다. 최종 성적은 40경기 20득점.2.4.2. 2016 시즌
감독으로부터 평소 행동, 리더십, 인간성 등을 높게 평가받아 커리어 첫 주장을 맡게 되었다. 전 시즌에 이어서 2선 공격자원으로 기용되어 기복없이 안정된 폼을 보여줬고 용병 공격수들과 많은 골을 만들어냈다. 리그 33경기 출장 12득점을 기록하며 두 시즌 연속 두자리수 득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팀 내 에이스적인 활약에 힘입어 구단에서 자체 선정한 시즌 MVP를 수상했다.2.4.3. 2017 시즌
최전방을 담당하던 용병 공격수 레안드로가 개막전부터 장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이 많아졌다. 시즌 첫골은 다소 늦은 감이 있는 리그 11라운드만에 나왔다. 교체 출전을 포함해 리그 전경기에 나섰지만 최종 성적은 34경기 8득점으로 세시즌 연속 두자리 수 득점에는 실패했다.2.4.4. 2018 시즌
시즌 중반까지 4골을 기록하는 등 본인의 폼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전 시즌 J2리그 아비스파 후쿠오카에서 19득점을 올린 용병 공격수 웰링톤, FC 바르셀로나에서 온 이니에스타등 이적생들과 신인 선수들의 활약으로, 점점 선발 기회가 줄어들며 출전 시간이 적어지고 있었다.2.5. 감바 오사카
2018년 시즌이 진행중이던 8월, 황의조 외에는 부진한 공격진을 보강하기 위해 감바 오사카가 비셀 고베에게 와타나베 카즈마의 이적 제의를 했고, 처음에는 이에 소극적이었던 비셀 고베였지만, 감바 오사카의 장신 공격수 나가사와 슌을 고베에 임대해주는 조건으로 트레이드와 비슷한 형태로 완전 이적이 성사되었다.2.5.1. 2018 시즌
팀내 주전 공격수 황의조가 아시안게임에 참가함으로써 생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이적과 동시에 선발로 투입되었고, 이적후 첫경기인 8월 19일 리그 23라운드 베갈타 센다이전에서 이적후 첫골을 기록했다. 9월 1일 리그 25라운드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에서 선제골을 기록, 이골이 결승골이되면서 팀의 연패 탈출을 이끌어냈다. 공격진의 에이스 황의조가 국가대표에서 복귀한 이후론 함께 투톱을 서며 최전방을 담당, 팀 4연승을 이끄는데 공헌했다.2.5.2. 2019 시즌
지난 시즌이 끝난 뒤 형 와타나베 다이고가 은퇴하면서 3형제 중 유일하게 현역 선수로 남게 되었고 황의조 또한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FC 지롱댕 드 보르도로 떠났다.최종 기록은 18경기 3득점
2.5.3. 2020 시즌
리그 세번째 경기에서는 나고야 그램퍼스를 상대로 득점을 바로 다음 경기에서는 시미즈 S펄스를 상대로 득점하고 침묵에 들어갔지만 17라운드와 20라운드 각각 다시 한 골씩 넣었고 코로나로 인해 취소됐던 10라운드 사간 도스전에서 멀티골을 넣으면서 33경기 6득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감바 오사카와는 작별한다.2.6. 요코하마 FC
감바 오사카 시절부터 쭉 달고 있는 등번호 39번을 받고 2021년부터 요코하마 FC에서 뛰게 됐다.2.6.1. 2021 시즌
30경기 4득점으로 첫 시즌을 마쳤다.3. 국가대표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인 2004년 AFC U-19 챔피언쉽에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당시 고등학교 축구부 소속 선수는 와타나베 카즈마가 유일했다고 한다. 준결승 대한민국전에서 득점을 기록했으나, 이후 U-20 월드컵 멤버에는 선발되지 못했다.
와세다 대학 시절이던 2007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2009년 프로 데뷔 시즌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12월 21일, 아시안컵 최종예선 A대표 멤버로 소집되었고, 다음해 1월 6일 예멘전에서 선발 출전하며 국가대표 A매치에 데뷔했다.
2011년, 2014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 예비 멤버로 등록되었으나 경기 출전은 없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데뷔 이후 J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2010년대부터 늘어난 유럽파 공격수에 밀려 국가대표와는 거의 인연을 갖지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올라운드 스트라이커신인 시절, 와타나베 카즈마는 빠른 발과, 테크닉에 더하여 정확한 슈팅 능력으로 많은 득점을 양산했다. 그리고 프로에서 경력을 쌓은 이후로는, 안정된 포스트 플레이와 위치 선정 능력이 좋아지며 원톱으로서의 역할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5. 여담
- 팬들로부터 주로 불리는 애칭은 카즈마.
- 삼형제 중 차남이며 장남 다이고와 삼남 미츠키도 축구 선수 경력이 있다. 형인 와타나베 다이고는 교토 상가 FC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2018년 카마타마레 사누키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고 한때 K리그의 부산 아이파크에서 뛰었던 적도 있다. 남동생 와타나베 미츠키는 대학 졸업 후 J3리그의 YSCC 요코하마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2016년 은퇴했다.
- 프로 신인 계약 당시 받은 등번호 9번은 요코하마 F. 마리노스 구단 역사상 신인에게 9번을 배번한 첫 사례라고 한다.
- 2009년 신인왕 수상 후에 J리그 신인왕의 수상 대상 연령이 내려가면서 대졸 신인으로서는 와타나베 카즈마가 마지막 수상자가 됐다.
- 2014년 4월 결혼해 유부남이 되었고 2017년 5월 딸이 태어나 아버지가 되었다.
-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난 이후 외모적으로 한국의 유명 개그맨 박명수와 묘하게 닮았다.
[1] 감바 오사카 공식 프로필[2] 이후 아리아케 SC와 합병하여 V-바렌 나가사키의 전신이 된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