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2 20:32:53

옥토두루스 전투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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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57년/56년 겨울,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가 이끄는 로마군이 알프스 산맥에 거주하는 부족들과 맞붙은 전투이다.

2. 상세

기원전 57년,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에서 행정을 보고 있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북동부의 벨가이 족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토벌하고자 갈리아로 향했다. 이때 그는 부관이었던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에게 제12군단을 맡겨 알프스 산맥에 거주하는 부족들을 평정하도록 했다. 당시 알프스 산맥의 세두네스족, 나투나데스족, 바랑가스족은 로마와 갈리아를 왕래하는 상인들에게 막대한 통행세를 부과했고, 때로는 상인 행렬을 습격해 인명을 살상한 후 상품을 빼앗기도 했다. 갈리아를 정복할 야망을 품고 있었던 카이사르는 이들을 제압해야만 정복 사업이 원활할 것이라 보고 갈바에게 이같은 막중한 임무를 부여했다.

갈바는 나투나데스족, 세두네스족, 바랑가스족을 상대로 성공적인 원정을 이끌어 그들로부터 로마의 동맹자가 되겠다는 서약을 받아낸 뒤, 옥토두루스에 겨울 숙영지를 세웠다. 옥토두루스는 현재의 마르티니로, 제네바 호수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이 시점에서는 바랑가스족의 도시였다. 갈바는 옥토두루스 시의 절반을 점거했고, 바랑가스족은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도록 허용했다. 숙영지를 요새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알프스 부족들이 로마군을 공격하기로 결의했을 때는 요새화가 완료되지 않았다.

겨울 숙영에 들어간지 며칠 후, 로마인들은 바랑가스인들이 살던 마을이 황폐해지고 마을 위의 경사면이 세두네스족과 바랑가스족의 대규모 군대[1]로 뒤덮인 것을 발견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기》에서 이들이 갑자기 전쟁을 결심한 것엔 로마의 간섭 때문에 앞으로 통행세를 걷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과 다수의 자녀들이 인질로 잡혀간 것에 대한 분노, 1개 군단 정도는 섬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기술했다. 갈바는 즉시 전쟁회의를 소집해 어떻게 대응할 지 논의했다. 당시 숙영지를 요새화하는 작업은 완료되지 않았고, 포위 공격에 대항할 충분한 보급품도 없었다. 다수의 장교들이 계곡을 빠져나가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갈바는 고민 끝에 일단 요새에서 저항하기로 했다.

전쟁회의 직후, 갈리아(켈트)인들이 공격을 개시해 고지에서 로마군 진영으로 돌격했다. 로마군은 6시간 동안 끝까지 항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영이 무너질 위기에 몰렸다. 이때 수석 백인대장 섹스티우스 바클루스와 트리부누스 밀리툼 가이우스 볼루세누스가 갈바에게
"진영에서 출격하여 켈트인들을 몰아내는 것만이 살 길이니 속히 돌격 명령을 내리십시오."
라고 요청했다. 갈바는 이를 받아들이고, 병사들에게 필룸을 수집하고 가능한 한 휴식을 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후 로마군은 진영의 모든 성문을 활짝 열고 갈리아인들을 향해 갑작스럽게 공격했다. 갈리아인들은 맹공에 당황하여 뿔뿔이 흩어졌고, 전체 병력의 1/3을 손실했다.

로마군은 비록 승리를 거뒀지만, 옥토두루스에 그대로 남기엔 보급품이 부족했고, 식량을 찾기도 요원했기에 마을을 불태운 후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로 철수하여 겨울을 보냈다.


[1]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30,000명에 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