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1]
1. 개요
후한 말의 여성이자 여포의 딸로 병주 오원군 구원현 사람.2. 정사 삼국지
<여포전>에 따르면 원술은 한윤을 사자로 보내 황제를 참칭할 생각을 여포에게 알리고 사돈을 맺으며 결속을 굳건히 할 것을 제의했는데, 여포는 이 혼담을 승낙하고 딸을 원술에게 보냈지만 진규의 설득에 넘어가 군사를 보내 딸을 도로 불러들이고 혼담을 파기했다.<여포전>에 주석으로 달린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포위되어 위급하자 허사와 왕해를 보내 원술에게 위급함을 알려 구원을 요청했다. 원술이 여포가 딸을 보내지 않은 일 때문에 원군을 보내지 않으려고 하자 왕해와 허사와 함께 여포가 무너지면 함께 무너질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에 원술이 원군을 보냈다. 한편 여포는 자신이 딸을 보내지 않은 일로 원술이 구원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비단으로 딸의 몸을 얽어 말 위에 묶은 뒤 밤중에 직접 딸을 데리고 나가 원술에게 보내려 했는데, 조조의 군사들과 조우해 그들이 활을 쏘며 가로막아 통과할 수 없자 다시 성으로 돌아왔다.
이후 여포가 죽은 후 여포의 처자식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3. 삼국지연의
정사에서는 친모가 누군지 나와있지 않지만 연의에서는 엄씨의 소생으로 설정되었다.[2]여포의 처자식들은 192년 장안에 남겨졌다가 방서의 도움으로 무사히 여포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원술이 자신의 아들이랑 여포의 딸과의 혼인을 제안하자[3] 엄씨의 찬성으로 여포가 승낙한다. 그러나 진규의 설득에 넘어간 여포가 혼담을 파기시킨다.
여포가 나중에 조조, 유비 등의 군대에 포위되어 망하기 직전에 최후의 수단으로 원술과 다시 접촉을 하고 혼인을 다시 맺기로 하는데, 원술이 딸부터 보내라고 닥달해서 어쩔 수 없이 여포가 직접 딸을 포위망 밖으로 내보내려고 한다. 이때 딸을 걱정한 나머지 솜옷을 입히고, 그 위에 갑옷을 입히고, 여포가 직접 업고 적토마에 타며 포위망 밖으로 가려 한다. 그러나 이미 정보가 누설되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돌아온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가 죽자 엄씨, 초선, 여씨 등 여포의 가족들은 허창으로 옮겨진다.
4. 미디어 믹스
자세한 내용은 여씨(삼국지)/기타 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1] 197년 원술-여포 간 혼담논의로 보아 빨리잡아도 181년/182년생으로 추정된다.[2] 동탁이 죽은지 6년 후에 여포가 죽기 때문에, 아래 언급되는 기령의 말을 감안하면 연의 기준으로도 초선의 딸일 수는 없다. 정사 기준으로 보면 초선은 존재하지 않고 언급되는 여포의 부인은 정실부인 엄씨 뿐인데, 엄씨의 딸이거나 기록되지 않은 첩의 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기록에 명시된 여포의 가족은 엄씨와 여씨 뿐이다.[3] 기령의 대사 중 여포의 딸이 급계(及笄)할 때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이때 여포의 딸이 약 15세 정도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