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0 21:19:25

에버튼 FC/역대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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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 시즌 요약


1878년 세인트 도밍고스 풋볼 클럽(St. Domingo's Football Club) 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고 1879년에 에버튼 FC로 이름을 바꾸었다. 본래는 홈 구장으로 앤필드를 사용했으나 존 훌딩이 앤필드의 주인이 되면서 임대료를 올려버리자 구디슨 파크로 구장을 옮겼다. 에버튼이 구장을 옮긴 바람에 생긴 구단이 바로 리버풀 FC이다. 덕분에 리버풀과는 전통적으로 라이벌 관계이며 두 팀의 경기는 머지사이드 더비라고 불린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스포츠 정도로 귀족들이나 기득권들에게 무시당하던 프로 축구를 제대로 인식하게 한 구단이기도 하다. 1916년 구디슨 파크에 영국 왕세자 일행이 처음으로 보러 와서 인식을 다르게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리그와 FA컵을 각각 1개씩 따기도 했다.

팀 역사상 첫 전환기는 1925년에 트란미어 로버스에서 딕시 딘을 사면서부터였다. 1927/28 시즌 중반까지 최고 기록은 59골이었고 그가 57골을 기록했을 때는 단 한 경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기록을 깨려면 해트트릭을 기록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아스날이라 모든 사람들이 최다 골 기록을 깨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그는 해트트릭을 기록해 리그 최고 기록인 60골을 기록했으며,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29/30 시즌 때 22팀 중 꼴찌로 강등됐지만 그는 팀에 꿋꿋이 남아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1시즌만에 선두로 1부 리그에 재승격시켰고, 1931/32 시즌에 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는 경이로운 활약을 보였다.

1937년에 딘이 팀을 떠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재정난,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부침을 겪다가 1961년에 팀의 센터포워드 출신인 해리 캐터릭이 감독으로 취임하여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을 앞세운 '토탈 풋볼'을 적용시켜 로이 버논과 알렉스 영, 조 로일 등의 활약으로 1962/63 및 1969/70 시즌에 각각 리그 우승을 했고, 1965/66 시즌에는 FA컵에서 우승을 했다.

1970년대 내내 꾸준히 리그 중상위권을 유지해왔으나, 라이벌 리버풀 FC의 패권 장악으로 만족할만한 성적을 못 냈다. 1979년부터 부임한 필립 카터 회장은 1980/81 시즌 도중에 '캐터릭의 아이들' 시절 멤버이던 하워드 켄달이 감독으로 취임하여 1985년에 리그 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에 우승시킴으로써 또 전성기를 누릴 찰나, 헤이젤 참사로 인해 잉글랜드 리그가 유럽대회에 출전금지를 당해 에버튼의 3번째 유로피언 컵 출전은 그렇게 물건너가고 말았다. 1986/87 시즌 우승 뒤 잦은 감독 교체와 재정난, 트레이드 실패 등이 겹치면서 이렇다 할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1995년에 FA컵 우승과 커뮤니티 실드 우승을 이루어냈으나 그때뿐이었고, 하락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져 매년 강등권을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대탈출'이 이어진 데다 머지사이드 더비에서도 매번 리버풀에 밀려 팀 사정이 암울했다. 1993/94 시즌과 1997/98 시즌에는 최종전 직전까지 강등권에 위치해있다가 최종전에서야 간신히 강등을 모면하기도 했다.

특히 1994년에 카터 회장으로부터 팀을 산 피터 존슨 회장이 1998년 11월에 에버튼 타투를 새길 정도로 팀을 사랑하던 팀의 간판 공격수 던컨 퍼거슨을 감독 몰래 뉴캐슬로 이적시키면서 팬들이 존슨 회장을 쫓아냈고, 공연 프로듀서 빌 켄라이트가 팀을 산 후 전임 회장 필립 카터를 회장직에 다시 불렀다. 같은 시기에 스코틀랜드 레인저스의 명장이던 월터 스미스 감독이 팀을 지휘했음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001/02 시즌 막판에 프레스턴 노스 엔드 감독이었던 데이비드 모예스를 영입하였는데, 이 영입이 구단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부임 초기부터 15위로 리그 잔류에 성공시킨 뒤 2002/03 시즌에 신동 웨인 루니의 활약으로 7위를 찍었으나, 블랙번 로버스보다 승수가 많은데도 UEFA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모예스 감독은 적은 돈으로 가격 대비 성능비가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고 유소년 선수들을 대폭 기용하면서 팀의 전력을 차차 상승시켰다.

그러나 2003/04 시즌에선 한 시즌만에 강등을 걱정할 정도까지 가면서 17위로 순위가 급격히 추락했고, 설상가상으로 2004/05 시즌을 앞두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유로 2004에서 4골을 터뜨려 득점 2위에 오른 신성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팔면서 전문가들 사이에 강등 유력 후보로 거론됐으나, 잉글랜드 정통 축구의 맥을 고수하며 리그에서 폭풍을 일으켜 4위를 찍어 챔피언스 리그까지 갔다. 다만 2005/06 시즌 챔스에선 본선 32강도 못가고 3차 예선에서 비야레알에게 2패로 허무하게 탈락했다.[1] 게다가 UEFA컵 1라운드에서도 디나모 부쿠레슈티에 원정에서 5:1 대패를 당하면서 여기서도 광탈당했다. 리그에선 초반 엄청난 부진에 빠지며 8경기 1골 1승7패로 꼴찌까지 떨어졌으나 첼시와의 홈경기에서 첼시의 개막 10연승을 저지한 뒤 다행히 반등에 성공하여 11위로 마감했다. 이후 2007-08 시즌 칼링 컵 4강, 2008-09 시즌 FA 컵 준우승 등 가시적인 성과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리그에서는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13-14 시즌부터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감독이 부임하여 새로운 첫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다 리그 승점과 함께 5위를 기록하여 미래가 밝아보였으나, 2014-15 시즌에는 11위로 순위가 곤두박질쳤다. 그 다음 시즌인 2015-16 시즌에도 상위 10위권 진입에 실패하면서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경질되었으며 로날드 쿠만 감독이 2016-17 시즌부터 지휘봉을 넘겼다. 부임 첫 시즌에 루카쿠의 맹활약을 비롯해 좋은 경기를 몇 차례 선보이며[2] 팀을 7위로 올려놓으며 유럽대항전 진출 티켓까지 확보해 2시즌간 망가졌던 에버튼의 명성을 되찾는 듯했으나...

2017-18 시즌 엄청난 돈을 써가며 선수를 가열차게 영입했음에도 어이없는 경기력으로 리그와 유로파를 가리지 않고 털려대며 초반에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로날드 쿠만 감독은 여러 변명을 둘러댔지만 팀의 경기력은 몇 주째 형편없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결국 파하드 모시리 구단주와 빌 켄라이트가 직접 구디슨 파크를 찾은 9R 홈경기 아스날전에서 2-5로 다시 한번 패배했다.[3] 아스날전을 치른 뒤 24시간 만인 2017년 10월 23일부로 로날드 쿠만은 전격 경질되었다.

일단 대체 감독으로 U-23 팀의 감독인 데이비드 언스워스가 몇 경기 대행을 맡은 뒤 2017년 11월 30일 프리미어리그 대표 공무원 중 하나인 샘 앨러다이스가 새로운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1년 반 계약기간으로 단기소방수 롤로 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 당시 중하위권을 맴돌던 에버튼의 순위를 어느 정도는 끌어올리면서 그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한 것 같았지만 핵심 윙어 아론 레넌을 당시 7위 경쟁팀인 번리 FC에 팔아넘기는 기행을 저지르는 것은 물론이고 팀 훈련에도 일주일에 3~4번 이상은 지각 또는 결근하기 일쑤였다. 사실 순위는 8위로 마감했지만 실질적으로 전적은 쿠만 경질 시즌 때와 별 차이는 없었고 최종전적도 13승 10무 15패로 패가 더 많았다. 정확하게는 에버튼보다 아랫순위의 팀들이 꽤 부진하면서 어부지리로 8위로 올라간 셈. 게다가 무리하다시피 유스기용엔 소홀하고 노장들 위주로 선수기용을 해서 에버튼의 미래를 설계하기에도 어려웠다. 이러했던 내부 사정들로 인해 시즌 폐막과 함께 경질되었다. C학점이 D학점보다 양호하다고 해서 절대로 좋은 학점은 아닌 셈이다.

2년만의 리빌딩에 돌입한 에버튼은 빠른 시일내에 마르코 실바라는 젊고 유망한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에 앉혔다. 이 때문에 마르코 실바의 전 소속팀이었던 왓포드와 갈등을 빚고 있고 2018-19 시즌 초반 현재도 갈등이 진행중. 잡음이 있긴 했지만 어찌됐든 모시리 대주주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그를 데려온 듯하며, 그도 모시리의 철학에 동의했다. 더불어 네덜란드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풋볼 디렉터인 마르셀 브랜즈를 새로운 단장으로 영입했다.

그 다음 시즌인 2019-20 시즌, 마르코 실바는 졸전을 거듭한 끝에 강등권까지 추락했고, 리버풀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5:2라는 스코어로 패배한 끝에 경질되었다. 감독대행은 과거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였고 은퇴 후 코치로 계속 에버튼에 남아 있었던 던컨 퍼거슨.

이후 에버튼은 21일(한국시간),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부임을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23-24 시즌까지. 하지만 계약기간 중이었던 2020-21시즌 종료 후 안첼로티는 레알 마드리드 CF의 부름을 받았다는 이유로 에버튼과의 계약을 해지해버리고 레알에 가 버렸고, 갑작스러운 변수를 맞은 보드진은 지역 라이벌팀의 레전드 감독으로 추앙받던 라파엘 베니테즈를 그 대체자로 세우는 충격적인 결정을 했다.

2. 개별 문서가 있는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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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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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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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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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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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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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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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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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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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0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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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2021-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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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2022-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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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2023-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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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PL 빅4 체제 하에서 2009-10 시즌 토트넘 핫스퍼가 리그 4위로 진출하여 챔피언스 리그 8강까지 간 것에 견주는 경우도 있다.[2] 홈에선 맨체스터 시티를 4-0으로 대파하는 명경기를 선보인 바 있다.[3] 마지막 골을 먹힌 뒤 모시리와 켄라이트의 참담한 표정이 잡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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