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2395><colcolor=#fff> 에밀 드리앙 Émile Dria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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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에밀 오귀스탱 시프리앵 드리앙 Émile Augustin Cyprien Driant |
출생 | 1855년 9월 11일 |
프랑스 제2제국 뇌프샤텔슈르엔 | |
사망 | 1916년 2월 22일 (향년 60세) |
프랑스 제3공화국 플라바 | |
학력 | 생시르 사관학교 (졸업) |
군사 경력 | |
복무 기간 | 프랑스 육군 |
1877년 ~ 1906년 1894년 ~ 1916년 | |
최종 계급 | 중령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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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군인, 정치인.2. 생애
피카르디 지역 출신으로 생시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877년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북아프리카에서도 복무한 적이 있으며 생시르 교관, 제1사쇠르대대장을 지냈었다. 1894년 중령으로 전역한 뒤 작가로 글을 쓰기도 했고 정계에 진입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1차 세계 대전 개전 후 현역소집되어 부대를 지휘 중이였고 베르됭 요새에 대해 방어준비가 허술하다, 독일군의 공세시 막아낼 수 없다, 무언가 심상찮은 징후가 보인다고 몇 달 전부터 보고했지만 조제프 조프르는 이를 무시했다. 보고가 묵살당하자 이에 열받아서 정식 보고계통이 아닌, 정치권 인맥을 활용해 동료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보내어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조프르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일로 조프르는 "정식 지휘계통 외의 보고는 인정하지 않겠다."며 전군에 엄명을 내렸고, 드리앙이 원했던 베르됭 방어력 강화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베르됭 전투가 시작되고 자신이 지휘하던 2개 대대를 이용해 필사의 지연전을 펼쳤고, 독일군도 철저하게 선 화력제압 후 진격 방식을 선택하여 신중히 진격했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귀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이미 독일군이 뫼즈 강과 베르됭 요새까지 도달했어야 할 정도의 전력비였음에도 지연전으로 인해 실제 독일군은 간신히 1차 목표선에 도달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드리앙이 지휘하던 2개 대대는 거의 전멸했고 드리앙 본인도 2월 22일, 후퇴전을 지휘하며 아군을 엄호하다가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