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前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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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에로스 베랄도 Eros Beraldo | |
출생 | 1929년 7월 27일 | |
이탈리아 왕국 베로나 | ||
사망 | 2004년 12월 27일 (향년 75세) | |
이탈리아 베로나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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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미상|체중 미상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칼초 파도바 (1948~1952) AC 밀란 (1952~1959) 제노아 CFC (1959~1961) 체세나 FC (1961~1963) |
감독 | 벨루노 칼초 (1968~1975) 칼초 파도바 (1975~1976) 키오자 소토마리나 (1976~1977) 아우다체 산미켈레 (1977~1979) | |
국가대표 | 없음 |
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출신 前 축구 감독.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활약했으며, 16세의 어린 나이에 세리에 A에 데뷔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특히 AC 밀란에서 7년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밀란에서는 주축 선수로서 팀의 3회 세리에 A 우승과 1회 라틴컵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1958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출전하여 준우승을 경험했다. 은퇴 후 감독으로 활동하며 세리에 D에서 2회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수술 후 합병증으로 7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2. 선수 경력
2.1. 클럽
1929년 7월 27일 이탈리아 베네토 주 베로나에서 태어난 베랄도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칼초 파도바의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뛰어난 실력으로 빠르게 주목받았다.1948년 16세의 나이에 파도바에서 세리에 A 데뷔를 했다. 당시 풀백으로 출전한 베랄도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파도바에서 4년간 43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했다.
1952년 AC 밀란으로 이적한 베랄도는 이곳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밀란에서 그는 주로 수비수로 활약했지만, 필요에 따라 미드필더로도 뛰며 팀의 전술적 유연성을 높였다.
밀란에서의 첫 번째 성과는 1954-55 시즌 세리에 A 우승이었다. 베랄도는 이 시즌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밀란의 스쿠데토 획득에 기여했다. 1956년에는 라틴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956-57 시즌과 1958-59 시즌에도 연달아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1958-59 시즌은 베랄도에게 있어 특별한 시즌이었는데, 이 해 밀란은 리그 우승과 함께 유러피언컵 결승에도 진출했다.
1958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맞붙었다. 베랄도는 결승전에 출전했지만 밀란은 연장전끝에 2-3으로 아쉽게 패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클럽으로서 유러피언컵 결승에 진출한 것은 큰 성과였다.
베랄도는 밀란에서 7시즌 동안 뛰며 총 108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다. 모든 대회를 합치면 133경기 출전에 4골을 기록했다.
1959년 제노아 CFC로 이적한 베랄도는 2년간 50경기에 출전했다. 1961년에는 체세나 FC로 이적하여 44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하며 1963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1968년 벨루노 칼초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한 베랄도는 7년간 팀을 지도했다. 벨루노에서 그는 1970-71 시즌 세리에 D 우승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1975년 모팀인 칼초 파도바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1년간 지도했다. 1976년에는 키오자 소토마리나로 이적하여 1년간 활동했다.
1977년 아우다체 산미켈레의 감독으로 부임한 베랄도는 1977-78 시즌 또다시 세리에 D 우승을 이끌었다. 이로써 그는 감독으로서 세리에 D에서 2회 우승을 달성했다.
1979년 감독직에서 은퇴할 때까지 베랄도는 주로 베네토 지역의 하부리그 팀들을 지도하며 지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