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9월 15일부터 1945년 5월 8일까지 로우니는 보병부대 지휘관으로 복무하면서 2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투였던 친쿠알레 작전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육군부 작전과에 근무하면서 일본 본토 상륙작전 기획에 참여했다. 여담으로 그가 속해있던 팀에서 사람을 달로 보낸다는 발상을 했다고하더라.[3]
로우니는 2명의 장교[5]들과 함께 작전을 계획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로우니를 포함한 3명의 장교들의 공통된 생각은 서해안에 상륙한다는 점이였다. 3명의 장교들은 각각 계획서를 제출했는데 알몬드 장군은 그걸 발표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때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하는건 어떤가?" 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이에 로우니는 두가지를 근거로 반대했는데 첫번째로 서울의 근처이므로 적이 강하게 저항할것이다라고 들었고 두번째로 조수의 차를 예시로 들었다. 로우니의 이런 반대에도 결국 맥아더는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이후 그는 USS 마운트매킨리함에 올라타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다.
이후 장진호 전투당시 로우니 장군은 비행장 활주로를 건설하여 물자보급과 부상자 수송을 담당한다. 그리고 흥남철수 당시에 로우니는 병사들이 탈출한 이후 자신도 탈출해야 되는데 때를 맞추지 못해서 2명의 병사들과 함께 고립된다. 그들은 중공군에게 항복하는 상황까지도 고려했으나 마침 지나가는 미군비행기에 SOS신호를 보내서 다행히 구조되어 일본의 공군기지에 상륙한다. 이후 로우니는 보병연대의 지휘권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