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46:19

엄주현

파일:엄주현.jpg
성명 엄주현(嚴柱賢)
생몰 1900년 2월 17일 ~ 1984년 4월 30일
출생지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병이무지리
사망지 경기도 이천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엄주현은 1900년 2월 17일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병이무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였지만 1935년 3월 경 삼도교(三道敎)의 교주 함용환의 권유로 삼도교에 가입했다. 이후 1936년 9월 16일경 함용환의 집에서 회합한 자리에서, 삼도교 지도부는 삼도교도의 힘만으로는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3·1 운동 당시 중심세력으로 활약한 천도교도의 협력을 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삼도교도가 천도교에 입교할 것을 결정했다. 엄주현은 이에 따라 천도교와 접촉하는 일을 담당했다.

1936년 10월 교주로부터 천도교도를 획득한 그는 조선독립운동의 확대를 도모할 것을 지시받고 서울로 올라와 경성부 내 내자정에 소재한 박인호의 집에 머물면서 천도교회에 출입하며 천도교인들과 협의했다. 그해 12월 20일경, 그는 함용환과 함께 경성부 돈암정에 소재한 천도교 중앙교회 장로 최준모의 집을 방문하여, 조선독립의 때가 도래할 것이므로 삼도교도가 조선총독부의 뜰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삼창하며 시위할 계획임을 알리면서 천도교도 합류할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이에 1937년 3월 6일 다시 방문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하자 삼도교만의 시위를 준비하였다.

1937년 3월 8일, 엄주현은 만세 시위에 사용할 장기(長旗)를 준비한 뒤, 동월 9일 정오를 기해 총독부 앞 광장에서 장기를 앞세우고 조선 독립만세를 삼창하다가 관할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후 1937년 6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8년 12월 4일에 출옥했다. 그 후 이천시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4년 4월 3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엄주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4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