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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colcolor=#fff>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 襄陽 禪林院址 出土 金銅菩薩立像 | |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우석로 70 (석사동, 국립춘천박물관)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불상 |
수량/면적 | 1구(대좌, 광배 포함) |
시대 | 통일신라(9세기) |
지정일 | 2024년 12월 26일 |
관리 | 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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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 |
1. 개요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은 2015년 신라시대 절터로 알려진 선림원지의 승방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굴된 작품이다. 9세기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면서도 보살상과 광배, 대좌, 보관, 영락, 정병까지 별도로 주물하여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제작하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4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2. 내용
이 작품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국보 제129호 '금동보살입상'이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소형 금동 불상 중에서는 가장 큰 크기의 문화재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2015년 신라시대 절터로 알려진 선림원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이보다 더 큰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이 발견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이마가 좁고, 뺨에 살이 있으면서 턱이 짧은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발견된 장소가 분명하면서 최대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발굴 당시부터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9세기 경 신라 선림원에서 제작한 것으로 확인된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은 국보 제129호보다 훨씬 화려하고 세련된 양식을 하고 있으며, 크기도 더 크고 제작 장소도 선림원으로 명확하며 무엇보다 금동보살이란 명칭답게 대부분의 금이 온전히 남아있어 국보 제129호보다 문화재적 가치가 훨씬 더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을 처음 발견하고 보존처리한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21년 2월 8일, 이 불상을 공개한 후 바로 국가보물 이상의 문화재 지정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보존 상태나 조형성 등이 워낙 빼어난 유물이라 여러 국립박물관에서 벌써 인수 관련 문의가 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발견 당시 가장 큰 이슈가 된 불상 크기의 경우,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은 현재 대좌가 온전히 남아있는 관계로 불상의 크기를 잴 때 대좌와 불신 높이를 모두 합친 반면 국보 제129호는 대좌 및 광배, 보관 등이 모두 소실된 상태라 단순 부처의 크기만을 비교하자면 국보 제129호가 더 크다. 만약 대좌 및 광배가 소실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여전히 국보 제129호가 한국 최대 크기의 소형 금동 불상 타이틀을 지켰을 것이다.
이 보살상은 발견 당시 엎어진 채로 발견되었는데, 삼국사기에 915년 쯤에 동해안에 60m 정도의 해일이 일었다는 사료가 있는 것으로 보아 9세기 경에 제작 후 이때 발생한 해일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살상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보살상과 뻗어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 연화 대좌와 머리에 쓴 보관, 몸에 걸친 영락, 그리고 심지어는 지물인 정병까지 별도로 제작한 전례가 확인되지 않은 양감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산사태로 빠르게 매몰되어 얼굴의 먹선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를 통해 보살 입상을 제작 당대에 어떻게 꾸몄는지를 알 수 있다.
2023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조계사 내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최초 공개되었고, 이후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2024년 12월 26일,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문화유산으로의 가치가 매우 뛰어나 추후 국보 승격을 기대해 볼 수 있다.
3. 참고 자료
4. 보물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은 2015년 강원도 양양군 선림원지의 승방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굴된 작품이다. 금동보살입상이 출토된 선림원은 통일신라기 선종의 요람으로, 존속 기간이 길지 않지만, 9세기 불교사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긴 순응(順應, ?∼?), 염거화상(廉巨和尙, ?∼844), 홍각선사(弘覺禪師, 814∼880) 등이 주석하며 그 계보를 이어간 역사적 의의가 큰 사찰이다.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은 이례적으로 광배와 대좌까지 온전히 갖춘 희귀한 사례이며, 투조 광배를 포함한 높이가 66.7cm로,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있는 발굴품 중 가장 큰 보살상이다. 발견 당시 엎어진 채로 발견되었는데 도금 상태로 볼 때 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1100여 년이 지나 원래 봉안 장소에서 그대로 발견된 것이다.
보살상, 광배, 대좌, 보관, 영락 심지어 지물인 정병도 각각 별도로 만들어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제작하였으며, 머리카락은 남색 안료로 칠하고 얼굴의 눈썹과 눈, 콧망울, 수염, 머리카락과 이마를 경계 짓는 발제선 등을 먹으로 그려 넣었다. 또한 보살상의 얼굴에서 보이는 도드라진 윗입술 표현과 입체적인 옷주름, 천의와 낙액(絡腋) 등은 9세기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배와 대좌 장식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전체적으로 도금이 거의 벗겨지지 않아 상태가 양호하고 조형적으로 매우 우수하다.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은 이례적으로 광배와 대좌까지 온전히 갖춘 희귀한 사례이며, 투조 광배를 포함한 높이가 66.7cm로,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있는 발굴품 중 가장 큰 보살상이다. 발견 당시 엎어진 채로 발견되었는데 도금 상태로 볼 때 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1100여 년이 지나 원래 봉안 장소에서 그대로 발견된 것이다.
보살상, 광배, 대좌, 보관, 영락 심지어 지물인 정병도 각각 별도로 만들어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제작하였으며, 머리카락은 남색 안료로 칠하고 얼굴의 눈썹과 눈, 콧망울, 수염, 머리카락과 이마를 경계 짓는 발제선 등을 먹으로 그려 넣었다. 또한 보살상의 얼굴에서 보이는 도드라진 윗입술 표현과 입체적인 옷주름, 천의와 낙액(絡腋) 등은 9세기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배와 대좌 장식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전체적으로 도금이 거의 벗겨지지 않아 상태가 양호하고 조형적으로 매우 우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