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양순서(梁順西) |
이명 | 양주봉(梁柱鳳) |
생몰 | 1869년 6월 9일 ~ 1919년 4월 11일 |
출생지 | 경기도 남양도호부 장안면 육동 (현재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장안리) |
사망지 | 경기도 수원군 경찰주재소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양순서는 1869년 6월 9일 경기도 화성유수부 장안면 육동(현 화성시 장안면 장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3일 차희식, 차병혁, 차병한, 차인범 등이 주도한 장안면 석포리 독립만세시위에 가담해 석포리 종암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앞세워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 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 때 그는 선두에 서서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시위군중과 함께 인근의 쌍봉산으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고창했다.이후 군중과 함께 우정면사무소로 가서 서류를 끄집어내어 불태우고, 투석으로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오후 5시경 시위군중과 함께 몽둥이를 가지고 화수리주재소로 몰려갔다. 군중들은 주재소 앞에서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고 곧 주재소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때 주재소 안에 있던 일본인 순사 카와바타 토요타로우(川端豊太郞)가 도주하면서 권총을 발사해 시위군중 1명이 맞아 죽자, 그는 양순서는 여러 인사들과 함께 그를 추격해 죽이고, 주재소를 파괴, 방화했다. 이 일로 4월 10일 체포된 그는 경찰주재소에서 심한 고문을 받은 뒤 이튿날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양순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