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사이언스 픽션의 역사를 다룬 평론에서는 빠짐없이 언급되는 밈. 원어는 Atwoodian Slip이며, 시녀 이야기로 유명한 캐나다의 유명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2003년 영국의 더 가디언지와 했던 인터뷰에서 나온 SF에 관한 유명한여기서 '말실수'란 프로이트적 말실수(Freudian Slip)에서 파생되었는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등에서 언급되는 무의식적인 말실수라는 의미다. [1] 애트우드의 발언은 SF의 요람인 서구권에서조차도 일반 대중이 현대 SF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인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 자주 언급된다.
2. 유래
애트우드는 신작 "오릭스와 크레이크 Oryx and Crake"(2003)의 인터뷰 중 "사이언스 픽션에서는 괴물이나 우주선이 나오지만, 사변소설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룬 소설(Science fiction has monsters and spaceships; speculative fiction could really happen)"이라고 단정했는데, 이 발언에 내포된 '내 소설은 (유치한) SF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를 다룬 (진지한) 사변소설이므로 SF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는 명백한 서브텍스트가 SF 독자들의 오래된 상처를 직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1960년대의 뉴웨이브 운동의 추진자들이 '새 시대의 사이언스 픽션'를 정의하는 용의로서 사변소설을 즐겨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어 선택 자체에는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광의의 디스토피아 SF 작품을 여럿 쓰긴 했지만 SF가 아닌 주류문단의 틀 안에서 활동해 온 애트우드가 노골적인 SF 폄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뉘앙스를 가진 표현을 통해 독단적으로 사이언스 픽션의 재정의를 시도했다는 점이 문제였다.[2]
애트우드 본인은 향후에 지기인 어슐러 K. 르 귄과의 대화를 통해 현대 SF에 대한 오해와 인식 부족을 상당 부분 바로잡았다고는 하지만, 상술한 콤플렉스의 정곡을 찌르는 워낙 임팩트가 있는 표현이었던 탓에 여지껏 회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