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1:55:11

알베르 1세(모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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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말디 왕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오노레 2세 루이 1세 앙투안 1세 루이즈 이폴리트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자크 1세 오노레 3세 오노레 4세 오노레 5세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플로레스탕 샤를 3세 알베르 1세 루이 2세
제13대 제14대 - -
레니에 3세 알베르 2세
모나코 경 }}}}}}}}}
<colbgcolor=#ce1126><colcolor=#fff> 모나코 공국 제11대 공
알베르 1세
Albert Ier, Prince de Monaco
파일:Prince_Albert_I_of_Monaco_-_circa_1910.jpg
이름 알베르 오노레 샤를 그리말디
(Albert Honoré Charles Grimaldi)
출생 1849년 11월 13일
프랑스 제2공화국 파리
사망 1922년 6월 26일 (향년 72세)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
재위기간 모나코 공
1889년 9월 10일 ~ 1922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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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1126><colcolor=#fff> 아버지 샤를 3세
어머니 앙투아네트 드 메로드
배우자 메리 빅토리아 더글라스-해밀턴
(1869년 결혼 / 1880년 무효화)
앨리스 하이네
(1889년 결혼)
자녀 루이 2세
가문 그리말디 가문 }}}}}}}}}
1. 개요2. 생애3. 가족
3.1. 자녀3.2. 부인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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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1대 모나코 (公).

2. 생애

3. 가족

3.1.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모나코 공 루이 2세
(Louis II, Prince of Monaco)
1870년 7월 12일 1949년 5월 9일 지슬렌 도망제[1]

3.2. 부인

  • 메리 빅토리아 더글라스-해밀턴(1850년 12월 11일 ~ 1922년 5월 14일)
    파일:Lady Mary Victoria Hamilton.Hereditary Princess of Monaco.jpg
    첫번째 부인은 영국의 해밀튼과 브랜든 공작인 윌리엄 해밀튼과 바덴의 마리 아말리 공녀[2]의 딸 메리 빅토리아 더글라스-해밀튼이었다. 본래 알베르의 할머니는 영국 공주 메리 아델라이드와 혼사를 맺길 원했는데 나폴레옹 3세빅토리아 여왕이 혼사를 반대 할거라면서 대신 본인의 친척인 메리 빅토리아를 추천했다. 나폴레옹 3세와 외제니 황후가 주최한 무도회에서 처음 보고 한 달 후인 1869년 9월 21일에 결혼했다. 곧 임신했지만 모나코에 적응하지 못 하고 결국 어머니와 외가로 돌아가 아들을 낳고 쭉 별거하다가[3] 1880년에 혼인이 무효화되었다. 이후 헝가리 출신인 톨나 백작 페스테틱스 타스질로(Festetics Tasziló)[4]와 재혼하여 1남 3녀의 자식을 낳았다.
  • 앨리스 하이네(1857년 2월 10일 ~ 1925년 12월 22일)
    파일:Alice Heine.Princess of Monaco.jpg
    모나코의 첫 미국 태생 공비이다. 뉴올리언스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5]프랑스 귀족 리슐리외 공작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고 22살에 미망인이 되었다. 1880년대 초에 알베르 1세를 만났지만 샤를 3세의 반대로 알베르 1세의 즉위 후에 결혼했다. 막대한 지참금은 공국의 재정적 안정에 기여했고 앨리스의 예술적 열정은 모나코를 문화 도시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둘은 관심 분야가 너무도 달랐던 터라 사이가 소원해졌고 각자 애인을 두었다. 결국 애인 문제로 공개적으로 뺨을 맞고 그 길로 모나코를 떠나 법적으로 별거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알베르 1세와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다.

4. 기타

  • 인터폴의 탄생에 있어 그 기틀을 만든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 독일 여성과 사랑에 빠졌으나 사실 그녀는 남친과 함께 왕실의 귀중품을 훔쳐 이탈리아로 달아났는데 모나코 경찰이 이탈리아에서 사람을 체포할 순 없었고, 이탈리아 경찰이 체포할 명목 역시 없었다보니 1914년을 기점으로 국제 경찰들의 회의를 만들었고 이것이 지금의 인터폴로 성장한 것.

[1] 지슬렌과의 적자녀는 없지만 술집 여가수인 마리 쥘리에트 루베와의 사이에서 사생아딸 샤를로트를 낳았다.[2] 바덴 대공 카를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의 막내딸.[3] 아들 루이 2세가 독일 출생인 이유이다.[4] 페스테틱스가 성이고 타스질로가 이름이다. 헝가리는 한국과 일본처럼 성이 이름 앞에 온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공(Fürst) 작위와 전하(His Serene Highness) 칭호를 수여받았고 그의 손자가 페스테틱스 가문의 가주로서 현재까지 생존해있다.[5] 아버지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친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