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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콘테/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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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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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축구인 안토니오 콘테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클럽

파일:external/i.dailymail.co.uk/32D6CA1D00000578-0-image-m-56_1459779269136.jpg
고향 US 레체 시절

콘테는 고향 구단 US 레체의 유소년 구단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불과 16살의 나이에 1986년 4월 6일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른다. 당시 레체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마조네의 지도 하에서 콘테는 팀에서 중요한 선수가 되었다. 1987년에는 정강이뼈 골절로 인하여 선수 생활이 끝날 뻔 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재활 훈련에 몰두하여 1년이 채 안되어 필드에 복귀하였다. 1989년 11월 11일에는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본인의 세리에 A 데뷔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레체에서 총 99경기를 뛰었고 1골을 득점했다.
파일:conte1.jpg
유벤투스 시절 - 2002-03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당시

콘테의 성실함과 중원 장악 능력을 유심히 살펴 본 당대 최고의 명장 조반니 트라파토니가 1991년에 레체로부터 그를 영입했다. 당시 유벤투스의 지역 라이벌 토리노도 콘테의 영입을 시도하였으나, 콘테는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고자 유벤투스행을 선택했다. 콘테의 꾸준한 경기력, 프로 의식, 리더십, 그리고 강한 정신력은 곧 유벤투스에서도 두각을 내기 시작했고, 1996년에는 역시 세계적인 명장인 마르첼로 리피잔루카 비알리가 떠난 이후 유벤투스의 주장으로 낙점하여 직접 그를 임명하였다. 이후 팀의 에이스로 떠오른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게 주장직을 물려줬으나 1998-99 시즌, 델 피에로의 부상으로 인해 주장으로 복귀, 2001-02 시즌까지 역할을 맡았다. 유벤투스에서 뛰며 콘테는 5회의 스쿠데토, 각각 1회의 코파 이탈리아, UEFA컵,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유벤투스의 황금기에 큰 기여를 한다. 2002-03 시즌 은퇴를 앞둔 34세의 베테랑으로서 유벤투스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으로 이끈 활약이 백미였다. 유벤투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명예의 거리 헌정 5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3. 국가대표

파일:external/i.dailymail.co.uk/002AB94000000258-3461998-image-a-49_1456319548266.jpg

콘테는 1994년 5월 27일 2-0 완승으로 끝난 핀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혁명가 아리고 사키는 당시 24살이었던 콘테를 처음으로 발탁하였다. 이후 콘테는 1994 미국 월드컵유로 2000에서도 조국을 위해 뛰었고[1], 두 대회 모두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다만 유로 1996은 불참하였는데, 이는 1996 UCL 결승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한 것이었다. 1994년에서 2000년까지 아주리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20번의 경기에 나섰으며 2골을 득점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콘테는 당대 이탈리아 중원 자원 중 중요한 자원으로 분류되었는데, 그의 투쟁심과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전술적 다양성이 그 이유가 되었다. 콘테는 중원의 어떠한 자리에서도 뛸 수 있었으나 주로 중앙 미드필더에서 박스 투 박스,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중원의 엔진 역할을 맡았고 가끔 우측 측면에 서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뛰어난 크로스 능력 때문이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당시 명성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으나[2]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근면함과 꾸준함, 그리고 빼어난 축구 지능이 콘테가 가진 무기였다.

또한 경기의 흐름을 읽고 선수들에게 직접 고함을 치며 지시를 내리는 타고난 리더형 선수였으므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그를 주장으로 임명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여기에 중거리 슈팅 능력과 전진성을 보유함으로써 간간히 원더골 및 쐐기골을 득점하였는데, 특히 발리 슈팅과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의 슈팅으로 인한 득점은 콘테의 숨겨진 장기 중 하나였다. 키는 176cm로 큰 편은 아니었지만 피지컬이 다부지고 탄탄하여 몸싸움에 능했으며, 헤더 능력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가지고 있어 헤딩 경합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투쟁심과 몸을 사리지 않는 대담한 플레이는 선수 생활 내내 콘테가 잔부상에 시달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콘테 스스로가 회고하기를 부상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대담성이 없었다면 유벤투스에서 당대 최고를 논하던 쟁쟁했던 선수단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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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히 유로 2000 당시에는 첫 경기인 터키전에서 오버헤드킥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비록 터키에게 동점골을 얻어맞는 등 고전하며 2-1로 신승하긴 했지만 콘테의 존재감은 강렬했다.[2] 당대 세리에 A는 현재의 PL에 비견되는 것으로 종종 언급될 정도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리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이 뛰었던 스타들(지네딘 지단, 로베르토 바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면면만 보아도 선수 시절의 콘테를 기술적인 면에서 톱클래스로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역시 유벤투스 선수답게 클래스 있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