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8 06:25:06

안병림

성명 안병림(安炳琳)[1]
본관 순흥 안씨[2]
생몰 1860년 11월 18일 ~ 1935년 10월 15일
출생지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매산리
사망지 충청남도 청양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병림은 1860년 11월 18일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매산리에서 안창식(安昌植)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안창식과 친형 안병찬(安炳瓚)은 을미사변에 반발해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관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적이 있었다. 이후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부친은 이미 사망했고 형 안병찬이 홀로 의병을 일으켰지만 1906년 2월 23일 일본군에게 패한 뒤 체포되었다가 4월 12일에 석방되었다.

이후 안병찬과 안병림 형제는 민종식의 의병대에 가담했고, 안병찬은 참모(參謀), 안병림은 참모사(參謀士)가 되었다. 두 형제는 민종식이 홍주성을 장악하는 데 공을 세웠고, 안병림은 돌격장(突擊將)이 되었다. 그러나 며칠 후 일본군의 반격으로 홍주성이 공략당하자, 안병림은 가까스로 몸을 피해 향리로 피신했다. 이후 일본군이 대대적인 수색에 착수했고, 결국 안병림은 체포되었다. 그는 한성에서 9개월간 구금되었다가 병을 얻어 거의 폐인이 될 뻔했다고 한다.

안병림은 겨우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1907년 10월 1일에 다시 형 안병찬 외 3인과 함께 체포되어 공주부로 압송되어 며칠간 심문받았다. 출옥 후에는 형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보필했고, 1935년 10월 15일에 자택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안병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한 부친 안창식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고, 친형 안병찬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1] 순흥안씨참판공파세보 상권 3305쪽에는 安炳으로 등재되어 있다.[2] 참판공파-장사랑공파 27세 병(炳)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