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계약 당시 | |
소속팀 | AC 밀란 (세리에 A) |
등번호 | 21 |
기록 | |
284경기 32득점 54도움 | |
81경기 7득점 10도움 | |
12경기 1득점 2도움 | |
18경기 3도움 | |
1경기 1득점 | |
2경기 | |
2경기 1도움 | |
1경기 1도움 | |
합산 성적 | |
401경기 41득점 71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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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드레아 피를로의 AC 밀란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이다.2. 이적
2001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인터 밀란에서 AC 밀란으로 이적한다.3. 2001-02 시즌
후이 코스타가 있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레지스타로 보직 변경 후 이적한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의 공백을 우려하던 시각을 불식시키며 밀란의 주전으로 뛰면서 기량이 급성장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2001-02 시즌: 29경기(선발 13경기) 2골 5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18 | 7 | 11 | 2 | 3 |
UEFA컵 | 9 | 4 | 5 | 0 | 1 |
코파 이탈리아 | 2 | 2 | 0 | 0 | 1 |
합계 | 29 | 13 | 16 | 2 | 5 |
4. 2002-03 시즌
시즌 전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아주리의 일원으로 참가하지는 못했다. 다만 포텐이 터지기 시작하는 유망주에 불과하던 때이니 월드컵 우승후보이자 전성기의 이탈리아 국가대표에 승선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언더독이었던 한국에게 일격을 맞으며 16강에서 탈락을 하며 결과적으로 피를로의 불참가는 아쉬움을 남겼다.02-03 시즌에도 밀란의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새롭게 팀에 합류한 클라렌스 세도르프, 피를로 평생의 파트너 젠나로 가투소와 중원 이루어 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기여했다.
2002-03 시즌: 42경기(선발 33경기) 9골 7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27 | 21 | 6 | 9 | 7 |
챔피언스 리그 | 12 | 10 | 2 | 0 | 0 |
코파 이탈리아 | 2 | 1 | 1 | 0 | 0 |
챔피언스 리그 예선 | 1 | 1 | 0 | 0 | 0 |
합계 | 42 | 33 | 9 | 9 | 7 |
5. 2003-04 시즌
03-04 시즌에도 여전히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밀란과 아주리의 레귤러가 될 자격이 있음을 보였고 밀란은 스쿠데토를 획득했다. 왕성한 활동량과 적지 않은 경기 출장 수를 보여 놀라움을 선사했다.2003-04 시즌: 44경기(선발 43경기) 8골 8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2 | 31 | 1 | 6 | 7 |
챔피언스 리그 | 9 | 9 | 0 | 1 | 0 |
수페르코파 | 1 | 1 | 0 | 1 | 0 |
슈퍼컵 | 1 | 1 | 0 | 0 | 0 |
인터컨티넨탈컵 | 1 | 1 | 0 | 0 | 1 |
합계 | 44 | 43 | 1 | 8 | 8 |
6. 2004-05 시즌
04-05 시즌엔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결승전에서 충격적인 역전패로 준우승에 그쳤고 리그에서도 2위에 그쳐 스쿠데토 역시 얻지 못했다. 피를로는 이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이스탄불에서의 패배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듯하다. 은퇴할 생각도 했었을 정도라고 한다.2004-05 시즌: 43경기(선발 38경기) 5골 10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0 | 26 | 4 | 4 | 6 |
챔피언스 리그 | 12 | 12 | 0 | 1 | 4 |
코파 이탈리아 | 1 | 0 | 1 | 0 | 0 |
합계 | 43 | 38 | 5 | 5 | 10 |
7. 2005-06 시즌
05-06 시즌 클럽에서도 역시 뛰어난 활약을 했으나 챔스, 리그 양쪽에서 모두 타이틀을 얻지는 못하였다. 이때 리그에 어마어마한 악재가 있기도 했다.이때의 피를로는 여러 시즌에 걸쳐 소속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왕성한 활동량에도 부상도 적었으니 피를로에 대한 평가는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해야 할 것이며 당대 동포지션 최고의 선수로 여겨질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월드컵과 클럽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FIFA FIFPro 월드 XI를 수상하기도 했다.
2005-06 시즌: 49경기 5골 6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3 | 31 | 2 | 4 | 5 |
챔피언스 리그 | 12 | 12 | 0 | 1 | 1 |
코파 이탈리아 | 4 | 0 | 4 | 0 | 0 |
합계 | 49 | 43 | 6 | 5 | 6 |
8. 2006-07 시즌
시즌 전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대단한 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우승을 이끌내며 절정의 폼을 자랑했다. 하지만 부상에 대한 우려도 받게 되었다.2006-07시즌에서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2년전 리버풀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며 우승을 차지해낸다. 팀의 에이스였던 카카는 발롱도르를 수상하고 그의 옆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피를로는 2007년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5위, FIFA 올해의 선수 시상식에서 7위를 기록하는 명예를 누린다.
하지만 챔스 우승에 불구하고 밀란의 스쿼드에 노쇠화가 시작됐고 제대로 된 리빌딩을 하지도 못했다. 비록 당시도 이미 예전만큼의 강력함을 보이지 못하고 노쇠화가 진행되던 시기였으며 사실상 챔스 우승도 몇몇 선수의 엄청난 활약으로 이루어낸 것이었다. 이미 밀란의 피를로에 대한 의존도도 당시에 이미 매우 컸으며, 결정적으로 여름 이적시장에서 첼시로 보낸 팀의 간판 공격수 안드리 셰브첸코의 공백을 제대로 메꾸지도 못했다.[1]
2006-07 시즌: 52경기(선발 48경기) 3골 10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4 | 31 | 3 | 2 | 8 |
챔피언스 리그 | 12 | 11 | 1 | 1 | 1 |
코파 이탈리아 | 4 | 4 | 0 | 0 | 1 |
챔피언스 리그 예선 | 2 | 2 | 0 | 0 | 0 |
합계 | 52 | 48 | 4 | 3 | 10 |
9. 2007-08 시즌
밀란이 07-08, 08-09, 09-10 세 시즌간 실망적인 모습을 보일때에도 피를로는 왕성한 활동량과 존재감을 보였으며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실감케했다. 다만 이 기간 동안 휴식이 부족하여 거의 혹사에 가깝게 뛰며 피를로의 컨디션에 따라 팀 전체의 경기력이 달라진다거나 직접 프리킥 성공률이 낮아진다거나 피를로를 향한 압박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여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2007-08 시즌: 45경기(선발 43경기) 5골 12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3 | 31 | 2 | 3 | 7 |
챔피언스 리그 | 8 | 8 | 0 | 2 | 4 |
코파 이탈리아 | 1 | 1 | 0 | 0 | 0 |
클럽 월드컵 | 2 | 2 | 0 | 0 | 0 |
슈퍼컵 | 1 | 1 | 0 | 0 | 1 |
합계 | 45 | 43 | 2 | 5 | 12 |
10. 2008-09 시즌
08-09 시즌에는 근육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팀의 주축들의 노화로 노인정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며 부진을 겪었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낸다. 이 시즌 종료 후 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첼시로 떠나게 된다.2008-09 시즌: 29경기(선발 29경기) 2골 3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26 | 26 | 0 | 1 | 3 |
UEFA컵 | 3 | 3 | 0 | 1 | 0 |
합계 | 29 | 29 | 0 | 2 | 3 |
11. 2009-10 시즌
09-10 시즌에는 3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노인정으로 전락한 밀란의 스쿼드때문에 노예 수준의 혹사를 당하며(거의 전 경기를 풀타임 출장했으며 거의 매경기 활동량도 적지 않았다.) 예전 만큼의 폼은 보여주지 못하였다. 여전히 롱패스는 일품이지만 프리킥의 경우에는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 것이 느껴지는 수준이었다.이시즌 안첼로티가 밀란을 떠나고 레오나르두 아라우주가 감독에 부임해서도 피를로는 부동의 주전을 꿰찼으나, 레오나르두 역시 성적부진이라는 베를루스코니의 개소리[2]로 경질시켜 버리며 팀은 위기를 겪게 된다.
2009-10 시즌: 43경기(선발 41경기) 1골 5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4 | 33 | 1 | 0 | 5 |
챔피언스 리그 | 8 | 8 | 0 | 1 | 0 |
코파 이탈리아 | 1 | 0 | 1 | 0 | 0 |
합계 | 43 | 41 | 2 | 1 | 5 |
12. 2010-11 시즌
06-07 시즌부터 워낙 혹사를 당해와서 폼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지만, 처진 플레이메이커 포지션에서 피를로와 동급 혹은 능가하는 선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피를로가 빠졌을 때 대체자를 구하기보단 전술을 고쳐야 할 정도로 존재감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실패했고, 밀란이 세대교체를 위해 피를로를 놓아주는 원인이 된다.단적인 예로, 남아공 월드컵 슬로바키아전때 피를로가 투입되자마자 공격의 활로와 볼배급이 원활해졌다. 피를로가 부상만 아니었다면 이탈리아가 토너먼트 진출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사비 알론소가 피를로와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완전 대체가 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그 전에 현대축구에서 피를로와 같은 처진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하기 힘든 것도 그 원인. 중원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는 현대축구에서 보디가드(가투소, 암브로시니)를 두고 경기를 조율하는 처진 플레이메이커는 유용할 만큼의 플레이를 해 주는 선수는 정말 찾기 어렵다. 샤비 알론소는 피를로보다 천재성과 킥력, 세밀함과 탈압박은 모자라지만 몸싸움, 수비적인 측면에서는 보다 뛰어나 보디가드 및 여러 역할들도 맡을 수 있다.
이 시즌, 칼리아리에서의 호성적을 바탕으로 떠오르는 젊은 감독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가 부임하면서 피를로의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알레그리는 피를로같은 레지스타보다는 안토니오 노체리노, 케빈 프린스 보아텡, 설리 문타리. 마르크 판보멀같이 활동량 좋은 미드필더를 선호하였고, 10-11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판 보멀이 영입되자 주전에서 밀리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타팀에서 쩌리취급받던 보아텡, 문타리, 노체리노는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즐라탄과 환상적인 케미[3]를 선보였으며, 보멀은 명불허전의 실력을 보이며 다시금 밀란의 미드필더진에 무게를 더했다.[4]
결국 10-11 시즌 밀란은 7년 만에 스쿠데토를 탈환했지만, 유벤투스 FC에서 영입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3년 계약이며 밀란은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에서 피를로를 내줄 수도 있고, 피를로 본인도 이적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2010-11 시즌: 25경기(선발 19경기) 1골 4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17 | 12 | 5 | 1 | 3 |
챔피언스 리그 | 5 | 5 | 0 | 0 | 0 |
코파 이탈리아 | 3 | 2 | 1 | 0 | 1 |
합계 | 25 | 19 | 6 | 1 | 4 |
[1] 본래 밀란의 공격수 플랜 1순위는 칼치오폴리로 강등된 유벤투스의 주전 공격수 즐라탄이였고, 즐라탄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인테르가 즐라탄 영입에 참가, 때마침 언더독 기질이 발동하여 인테르로 가버렸다. 결국 차선택으로는 레알 베티스에서 나름 활약을 보여줬던 브라질 출신의 히카르두 올리베이라를 영입했는데 시즌 시작전부터 비판이 엄청났고, 모두의 예상대로 데뷔전 및 초반 반짝후 제대로 폭망했으며, 질라르디노 역시 카카의 미끼로 쓰이느라 파르마 시절의 파괴력이 줄어버렸고, 인자기는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서 카펠로에게 버림받은 호나우두를 영입하며 공격진이 안정된다.[2] 09-10 시즌 레알에 카카를 판 6,800만 유로 중 일부인 2,000만 유로로 팀 스타일과는 상극인 훈텔라르나 쩌리들만 업어와준 주제에 3위의 성적을 기록해놨더니 성적부진이랍시고 경질시켜버렸다. 그 전에 레오나르두도 예스맨은 아니라 베총리와의 불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3] 특히 노체리노는 시즌 10골을 기록하는 등 의외의 영입 수완으로 꼽혔다. 물론 보아텡은 공격전개도 못하고 조율도 못하고 패스도 못하고 공만 뻥뻥 날리는 즐라탄빨 스텟귀신이라 무지하게 까였지만 나름 쏠쏠하게 활약하였다. 사실 밀란 공미의 전임자들이 카카, 루이 코스타, 보반, 리베라등 쟁쟁한 선수들이였기에 더 까인감이 없진 않다.[4] 암브로시니가 매우 준수하긴 했지만 기복이 있던 편이고, 가투소는 09-10 시즌의 부상으로 폼이 나락으로 떨어져 08-09 시즌 뮌헨의 오퍼를 받고 팔았었어야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쩌리로 전락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