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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바웅 왕조 제3대 국왕 신뷰신 ဆင်ဖြူရှင် | Hsinbyushin | |
<colbgcolor=#53D9C4><colcolor=#fff,#fff> 출생 | 1736년 9월 12일 |
꼰바웅 왕조 슈웨보 | |
사망 | 1776년 6월 10일 (향년 39세)[1] |
꼰바웅 왕조 잉와 | |
재위 기간 | 제3대 국왕 |
1763년 11월 28일 ~ 1776년 6월 10일 | |
전임자 | 나웅다우기 |
후임자 | 싱구 |
부모 | 아버지 : 알라웅파야 어머니 : 윤 산 |
종교 | 상좌부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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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꼰바웅 왕조의 제3대 왕.신뷰신은 동남아에서 손꼽히는 정복왕으로 유명한데, 청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동시에 아유타야를 멸망시키고 아홈 왕국 등을 공격하는 등 짧은 재위기 동안 무수한 전과를 올린 걸출한 인물이다.
2. 생애
1736년 9월 12일 슈웨보의 영주이자 꼰바웅 왕조의 초대 왕 알라웅파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청소년기부터 아버지의 원정에 동행하며 미얀마의 통일 사업을 완수하는 데 일조하였다. 24세 때 선왕인 알라웅파야가 숨지자 형이 먼저 2대 왕 자리를 계승하였으나 2대 왕 나웅다우기는 단명하였고 그 뒤를 이어 버마 왕국의 3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신뷰신의 재위기에 청나라 건륭제는 총 네 번이나 버마를 침략 해왔는데 네 번 모두 청 측의 처절한 패배와 신뷰신의 승리로 끝났다. 청은 네 번의 침략 와중에 4명의 유능한 지휘관을 잃었고 7만여명의 사망자를 냈다.신뷰신의 대청전쟁 승리는 단지 버마의 역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당시 티베트와 준가르, 몽골 등을 영토로 편입하면서 유례없는 제국의 면모를 갖춘 청은 이제 동남아시아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었다. 만일 신뷰신이 청에 패배하고 버마가 청에 편입되었다면 청나라의 동남아 확장정책이 지속되었을 것이며 미얀마나 태국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현재의 티베트나 위구르와 비슷한 운명에 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2]
시암의 연대기에는 신뷰신이 "강도처럼 싸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시뷰신은 기본적으로 광개토대왕처럼 군사적 능력을 바탕으로 한 정복욕이 매우 강한 왕이었다. 청의 침략을 막아낸 것과 별도로 주변 영토확장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1764년에는 치앙마이와 비엔티안을 점령하였고 1765년 재위 삼년만에 서와 북의 양방향으로 아유타야를 침공해서 2년간의 전쟁 끝에 1767년 아유타야를 함락해서 멸망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각지의 지방 세력들이 신뷰신의 재위 기간 내내 벌어진 무수한 전쟁으로 지친 나머지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를 성공적으로 진압하면서 이후 꼰바웅 왕조의 기틀을 확립했다. 특히 1773년 일어난 몬족의 반란은 매우 잔혹하게 진압하면서 본보기를 보였다. 다만 재위 말기인 1774년에 신뷰신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었는데, 이 틈을 타서 신뷰신에게 충성했던 봉신들마저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모두 진압되었지만 이러한 측근들의 발호는 신뷰신 사후 왕조가 불안정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신뷰신은 병을 얻은 후에도 반란 진압과 주변 국가와의 전쟁을 지속하다가 1776년 시암과 마니푸르에서 전투를 벌이던 도중 병사했다. 한국사의 진흥왕처럼 활발한 정복전쟁 외에 불교에 심취했던 면모도 있다. 신뷰신 재위시절의 위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 바로 현재까지도 미얀마 불교의 성지로 신성시 되고 있는 쉐다곤 파고다이다. 신뷰신의 왕비는 기존의 쉐다곤 파고다에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황금을 입히고 기존 90미터 높이의 탑을 현재와 같은 99미터 높이로 증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