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6-06 15:46:14

신균우

파일:신균우.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요시다 킨우(吉田均雨)
본관 고령 신씨[1]
출생 1925년 9월 29일[2]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사망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균우는 1925년 9월 29일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에서 아버지 신승휴(申升休, 1897. 12. 4 ~ ?. 1. 23)와 어머니 김녕 김씨 김신방(金新方, 67세 때 별세)[3]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4] 아버지 신승휴는 포두공립보통학교 훈도를 역임했다.

그는 이후 전라남도 광주부 남정(현 광주광역시 동구 남동)에 있는 남기인(南基仁)의 집에 살면서 광주서중학교에 다녔다.

그러다가 1941년 3월 기태룡·기환도·윤봉현(尹奉鉉)·박화진(朴和珍)[5] 등과 함께 선배들이 졸업한 후 침체되었던 무등회(無等會)의 조직을 재정비하고 일본어 상용 반대 활동을 강화하였다.

그러던 중 1943년 5월에 무등회를 중심한 광주서중학교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단행하자, 그는 여기에 참가해 시위를 주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44년 9월 18일 광주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불경죄, 상해 혐의로 징역 단기 2년, 장기 4년을 선고받은 뒤 대구청소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같은 해 12월 11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위 혐의에 대해 형집행정지선고받고 출옥하였다.

8.15 광복 후 상경한 그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해 한동안 다녔으나, 국대안 반대운동[6]에 가담했다가 제적당했고, 2년 후인 1948년경에 친구 배종국(裵鐘國)[7]이 재학 중인 동국대학교에 편입했다.

그러나 동국대학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의 혼란 와중에 실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신균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시중공파 24세 우(雨) 항렬.[2] 음력 8월 12일.[3] 김상기(金相基)의 딸이다.[4] 남동생 신창우(申昌雨, 1962 ~ )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 창원 황씨 황기주(黃基柱)의 딸인 황부련(黃夫連)의 소생이다.[5] 창씨명 : 아라이 와로(新井和郞).[6] 1946년 미군정이 제정한 국립대학안을 반대하여 일어난 동맹 휴학운동[7] 창씨명 : 다케타니 오난(武谷茂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