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아구리 F1 팀 | ||
Super Aguri F1 Team | ||
<colbgcolor=#ff0000> 국적 | <colbgcolor=#fff> 일본 | |
본부 | 영국 옥스퍼드셔 리필드 | |
본사 | 혼다 | |
설립자 | 스즈키 아구리(鈴木亜久里) | |
수뇌부 | 스즈키 아구리 (鈴木亜久里) (2006~08)[1] 다니엘레 오데토 (Daniele Audetto) (2006-08)[2] 믹 에인슬리-카우린쇼 (Mick Ainsley-Cowlishaw) (2006-2008)[3] 케빈 리 (Kevin Lee) (2006-2008)[4] 웨인 험프리스 (Wayne Humphries) (2006-2008)[5] 그레이엄 테일러 (Graham Taylor) (2006-2008)[6] 마크 프레스턴 (Mark Preston) (2006-2008)[7] | |
출전 드라이버 | 사토 타쿠마 (2006~08) 이데 유지 (2006)[8] 프랭크 몽타니 (2006) 앤서니 데이비슨 (2007~08) | |
출전 기록 | ||
레이스 참가 횟수 | 39회 | |
우승 | 0회 | |
폴 포지션 | 0회 | |
패스티스트 랩 | 0회 | |
포디움 | 0회 | |
점수 | 4점 | |
첫 경기 | 2006년 바레인 그랑프리 | |
마지막 경기 | 2008년 스페인 그랑프리 | |
드라이버 챔피언 | 0회 | |
컨스트럭터 챔피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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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슈퍼 아구리 F1 팀은 2006 시즌부터 2008 시즌까지 포뮬러 1에 참가했던 일본 국적의 팀이다.2. 역사
2.1. 창단(2005)
혼다는 2005년 말 브리티시 아메리칸 레이싱 인수를 완료하여 젠슨 버튼을 리드 드라이버로 유지했지만, 팀에서 두 번째 풀 시즌이었던 그해 사토가 단 한 점만 득점하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이 보이자 사토 타쿠마 대신 루벤스 바리첼로를 대신했다. 일본에서는 대중의 압력과 사토의 지속적인 인기로 인해 혼다가 포뮬러 원에서 사토가 계속 경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는 슈퍼 아구리의 F1 프로젝트와 슈퍼 아구리의 공식 파트너인 혼다의 엔진 공급에 영향을 미쳤다.팀을 시작하기 위한 협상은 2005년 2월에 시작되었지만 9월이 되어서야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팀은 11월 1일[9]에 F1의 운영 기관인 FIA에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 참가 의사를 등록했다. 그러나 2006년 FIA의 공식 엔트리 명단 보도 자료에 따르면 슈퍼 아구리의 엔트리를 승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팀이 필요한 4,800만 달러의 엔트리 채권을 제때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팀은 2006년에 엔트리를 재신청했고 다가오는 시즌을 위한 자동차를 계속 준비했다. 처음 등록을 놓친 팀은 기존 10개 팀이 만장일치로 엔트리에 동의하도록 설득해야 했다. 미들랜드 팀은 잠재적으로 TV 수익 감소를 이유로 차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필요한 만장일치 동의를 얻었고 2006년 1월 26일 FIA에 의해 팀의 엔트리가 확정되었다.
2.2. 2006년 시즌
2006년, 이 차량은 자체 작업팀의 급여 임대를 통해 커스트머용 혼다 엔진[10]으로 구동되었으며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사용했다. 섀시인 SA05는 2002년형 애로우즈 F1팀 A23의 업데이트 버전으로, 전 미나르디 팀 프린시펄 폴 스토다트에 따르면 애로우즈 F1 팀이 경영권을 인수할 때 같이 구입했다고 한다. 따라서 팀의 자동차, 인프라, 심지어 운영 기반은 TWR 애로우 F1 팀에서 시작되었다. 전자 팀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기술적 측면은 전직 애로우즈 엔지니어인 마크 프레스턴이 감독했으며, 그는 많은 구형 애로우즈 메카닉들을 다시 데려왔다. 팀은 2006년 시즌 후반에 유럽 레이스를 위해 새로운 자체 섀시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팀은 구형 섀시를 SA06으로 업데이트했는데, 이는 호켄하임에서 열린 독일 그랑프리 이후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2006 시즌에는 사토 타쿠마와 이데 유지가 팀의 초기 레이스 드라이버로 참여했으며, 프랭크 몬타니가 리저브 드라이버로 참여했다. 나이[11], 유럽 레이싱 경험 부족, 영어 구사 능력 부족으로 인해 이데 유지의 선발은 곤혹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즈키 아구리는 처음엔 일본 인재를 육성하는 데 단호했다. 5월 4일, 4번의 레이스 끝에 팀은 크리스찬 앨버스와의 충돌로 이데 유지의 슈퍼 라이선스가 취소된 후 몬타니가 유럽 그랑프리 및 후속 레이스에서 이데 유지를 대신해 레이스 드라이버로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바레인에서 열린 데뷔 레이스에서 사토는 기계적 결함으로 35바퀴를 돌고 피트에서 사투를 벌인 이데가 결국 리타이어하는 동안 그랑프리를 성공적으로 완주했다. 스즈키는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이 차가 최대 10바퀴밖에 돌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레이스가 팀에 좋은 테스트라고 생각했다. 팀의 두 번째 레이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고, 이번에도 사토만이 레이스를 완주했다.
슈퍼 아구리의 세 번째 레이스인 호주 그랑프리는 상당한 개선을 보였다. 이데는는 "사토와 저 모두 레이스를 완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이데는 미들랜드 F1 팀의 드라이버 크리스티안 앨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를 일읔켰고, 앨버스는 다치지는 않았다. 이데는 이 사고로 레이스 스튜어드들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유럽 그랑프리부터 이데와 몬타니는 팀 내 역할을 변경했고, 이데는 그랑프리 외에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FIA의 요청에 따라 테스트 드라이버로 강등되었다. 2006년 5월 10일, FIA 허가 사무소는 이데의 슈퍼 라이선스를 취소하여 적어도 2007년 시즌까지 이데의 F1 좌석 복귀를 금지했다.
몬타니는 프랑스 그랑프리까지 레이스를 펼쳤고, 2006년 6월 8일 야마모토 사콘이 슈퍼 아구리의 세 번째 드라이버가 되었다. 몬타니와 야마모토는 독일 그랑프리에서 역할을 바꿨고, 야마모토는 슈퍼 아구리의 두 번째 차량을 타게 되었다.
업데이트된 SA06이 독일 그랑프리에서 처음 레이스에 출전했을 때, 비록 레이스를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괜찮은 예선 순위[12]를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팀의 컨디션 향상은 사토의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인상적인 10위를 차지하며 절정에 달했고, 야마모토는 대부분의 포인트 완주자보다 1초도 채 뒤처지지 않은 7번째로 빠른 랩을 기록했다.
2.3. 2007 시즌
2006년 혼다 섀시를 사용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경쟁 팀 윌리엄스와 스파이커는 포뮬러 원 규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거센 저항을 받았다. 두 팀은 콩코드 계약에 따라 자동차에 다른 포뮬러 원 자동차 제조업체가 설계하거나 제작한 부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슈퍼 아구리는 이에 대해 위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FIA는 이 문제가 이미 법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콩코드 계약에 대해 조치를 취할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슈퍼 아구리는 여전히 큰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스포츠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슈퍼 아구리는 2006년 11월 15일 사토 타쿠마와 앤서니 데이비슨[13]이 2007년에 팀에서 운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슈퍼 아구리는 12월 15일에 2007 시즌에 기에도 반데가르데가 세 번째 드라이버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스파이커 F1 팀으로 떠났다. 2006년 말 세컨드 드라이버였던 야마모토 사콘은 2007년에 다시 테스트 드라이버로 복귀했다.
팀은 2007년식 차량이 허용된 것보다 더 많이 파괴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3월 2일, 슈퍼 아구리는 호주 그랑프리 첫 연습 세션 48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SA07을 공개하였다. 팀의 드라이버 데이비슨과 사토는 호주 GP 예선에서 10위와 11위를 차지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전까지 이 팀이 세운 예선 최고 성적은 17위였다. 사토는 레이스 막판에 12위로 떨어졌고, 앤서니 데이비슨의 레이스는 첫 바퀴에서 스파이커의 아드리안 수틸이 패싱 동작에 실패한 후 그와 충돌하면서 망가졌다. 데이비슨의 차는 공중으로 떠올라 땅에 크게 부딪히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통증을 견디고 16위를 기록했고 레이스 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2007년 호주 그랑프리 직전에 팀은 SS 유나이티드 그룹 오일 & 가스 컴퍼니를 타이틀 스폰서로 발표했다. 또한 2007년 슈퍼 아구리는 레이스 인터콤 공급을 위한 공식 공급업체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SS 유나이티드 그룹은 스폰서십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팀은 최대 30명의 직원을 감원해야 했다.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사토 타쿠마가 8위를 차지하며 사상 첫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 일본 드라이버는 페라리, BMW 자우버, 토요타, 윌리엄스 등의 포인트에서 자동차가 탈락하는 혜택을 누렸다.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사토 타쿠마는 6위를 차지하며 3점을 획득해 디펜딩 세계 챔피언 페르난도 알론소를 제치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ITV 해설자들은 피트 스톱이 실패하지 않았다면 사토가 4위까지 올랐을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유럽 그랑프리가 끝난 후 야마모토 사콘은 남은 시즌 동안 스파이커 F1 팀에 합류하여 크리스티안 앨버스가 그의 자리를 대체했다.
2.4. 2008 시즌
슈퍼 아구리는 마그마 그룹이 팀의 일부를 인수한 후 2007년 드라이버인 사토 타쿠마와 앤서니 데이비슨을 유지했다. 2008년 1월 8일, 팀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SA08을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그러나 2월 12일 슈퍼 아구리는 팀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SA08 출시를 연기하고 얼마나 오래 걸릴지 발표하지 않았다. 그 후 팀은 일부 부품이 도착하지 않아 최종 프리시즌 테스트 참가를 취소했지만 2008년 호주에서 열리는 첫 레이스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그마 그룹이 인수 제안에서 손을 떼면서 슈퍼 아구리의 미래는 다시 불투명해졌다.슈퍼 아구리 F1 팀은 바르셀로나로 이동하여 버니 에클레스톤의 재정 지원을 받아 2008 스페인 그랑프리에 출전했다. 2008 터키 그랑프리를 위해 이스탄불 파크에 도착한 슈퍼 아구리의 트럭과 모터홈은 혼다 레이싱 CEO 닉 프라이가 레이스 주최 측에 슈퍼 아구리가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서킷 참가가 거부되었다. 2008년 5월 6일, 팀 창립자이자 프린시펄인 스즈키 아구리는 파트너인 SS 유나이티드 그룹 오일 앤 가스 컴퍼니의 계약 위반으로 인해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해 팀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다는 이유로 재정적 문제로 인해 2008 FIA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에서 즉시 기권한다고 발표했다. 5월 7일, 기업 복구 파트너 팀이 운영을 위한 구매자를 모집하기 위해 임명된 후 슈퍼 아구리가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 확인되었다.
마그마 그룹이 철수한 것으로 언급되었지만, 닉 프라이가 마그마 그룹이 제안한 3년 부채 상환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결정적인 문제였다. 프라이는 한 번에 전액을 지불하지 않으면 팀의 경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팀의 자산은 독일 사업가 프란츠 힐머가 매입했으며, 브라밤이라는 이름으로 2010 FIA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위해 신청했지만 실패했다. 이 팀의 지적 재산은 여전히 영국 리필드에 위치한 공장에 위치한 폼텍 컴포지트가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