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2-04 21:48:20

손호(독립운동가)

파일:손호.jpg
성명 손호(孫滸)
이명 손허(孫許)
자 / 호 목여(穆汝) / 경암(敬庵)
본관 밀양 손씨[1]
생몰 1897년 3월 15일 ~ 1936년 8월 23일[2]
출생지 경상남도 밀양군 산내면 송백리[3]
사망지 경성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3.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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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손호는 1897년 3월 15일 경상남도 밀양군 산내면 송백리에서 아버지 손진수(孫珍秀)와 어머니 안동 권씨 권상봉(權相鳳)[4]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4년부터 1921년까지는 밀양군 산내면에서 서기로 재직했으며,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1925년에 조직된 신민부(新民府)에 가담했다.

1927년 4월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김좌진으로부터 일제 고관과 친일분자를 주살하고 주요 시설을 폭파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라는 밀명을 받고 국내로 잠입했다. 이후 이병묵(李丙默)·신현규·손봉현·윤창선(尹昌善) 등과 함께 대구지방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수행하다 1928년 5일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9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강도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6년 8월 23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손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3. 논란

경성종로경찰서가 기록한 '손봉현 심문조서'에 따르면, 손봉현손호 등과 함께 해원교(解怨敎)라는 종교단체에 가입하고 장인에게 "해원교를 믿으면 무엇이든지 다 되고, 또 그 교의 본부에 가면 학업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함께 가보자"고 해 장인을 현혹시킨 뒤 그로부터 3천원을 빼앗아서 해원교 밀양지부장 윤치백(尹致伯)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에 따른다면 손호는 손봉현과 함께 사이비 종교에 가담한 뒤 그가 장인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걸 도와준 것이다.#
[1] 평리공파 첨사공(휘 신복)계 39세손.[2] 음력 7월 7일.[3] 밀양 손씨 집성촌이다.[4] 권기(權琪)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