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2-27 23:01:18

속리산 세조길


1. 개요2. 내용

1. 개요

조선 세조가 직접 걸어다녔다고 전해지는 속리산 관광로. 법주사로부터 세심정까지 약 2.4㎞ 구간이다.

2. 내용


1450년경 조선의 7대왕이었던 세조가 직접 속리산을 왕래하던 길이다. 2016년 9월에 처음 개통하여 그 해에만 70만명 이상이 탐방하여 가장 성공적인 명소 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조선 세조는 속리산 지역을 자주 왕래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행차는 총 3번이 있었다. 첫번째는 당시 복천암에 거주하고 있던 신미대사를 수차례 찾아가 훈민정음 보급에 대하여 논의한 것이고, 두번째는 과거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서 불경을 읽다 할아버지(작제건)의 유적을 찾기 위해 속리산 능선을 따라 말티재[1] 길을 걸었는데, 훗날 고려 태조를 크게 흠모하던 세조가 진흙으로 된 말티재 길에 얇은 돌을 놓아 정비한 뒤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던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말년에 피부병에 걸린 세조가 요양차 온 것이다. 그 외에도 당시 백성들의 고충을 직접 듣기 위하여 속리산 지역 및 타지방을 자주 왕래하였다고 전한다.

속리산 세조길은 법주사에서부터 세심정까지이며, 세조가 바위 그늘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자리인 눈썹바위,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꿈에 나타나 점지해 준 곳으로 이에 세조가 직접 목욕한 목욕소, 세조가 성스러운 불당 바로 앞이니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도록 했다는 법주사 하마비, 그 외에 조선 세조가 문신들과 시문을 읊었다는 속리산 문장대, 세조가 직접 관직을 내린 천연기념물 103호 속리산 정이품송, 세조가 법주사 승려들에게 쌀 3백석, 종 30명, 논밭 2백결을 내리며 추가로 "복천암에 있는 돌기둥을 끌되 돌이 더이상 끌리지 않는 곳까지 법주사 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자 이에 승려들이 돌기둥을 밧줄에 묶어 온힘을 다해 끌고 또 끌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사하촌 은구석(恩救石) 등의 여러 볼거리들이 있다.

세조길은 2016년 9월에 처음 개통하여 두 달만에 72억원을 벌었고 국립공원 속리산 세조길, 경제 파급효과 72억원, 속리산 관광객은 64만명에서 122만 3천 200명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하여 가장 성공적인 명품길 사업으로 뽑혔다.
[1] 보은군 장안면 장재리와 갈목리를 연결하는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