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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cho III de Castilla | ||
가문 | 이브레야 왕조 | |
생몰년도 | 1134년 ~ 1158년 8월 31일 | |
출생지 | 카스티야 왕국 톨레도 | |
사망지 | 카스티야 왕국 톨레도 | |
재위 기간 | 아르타호나의 국왕 | 1153년 - 1157년 |
카스티야의 국왕 | 1157년 - 1158년 | |
아버지 | 알폰소 7세 | |
어머니 | 베렝겔라 | |
친형제 | 페르난두 2세, 콘스탄사, 산차, 알폰소 | |
이복 형제 | 페르난도, 산차, 우라카 라 아스투리아나, 에스테파니아 알폰소 라 데스디차다 | |
배우자 | 수리아 가르세이츠 | |
자녀 | 알폰소 8세 |
1. 개요
카스티야 왕국의 국왕.2. 생애
1134년경 카스티야 왕국 톨레도에서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7세와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렝게르 3세의 딸 베렝겔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친형제로 페르난두 2세, 콘스탄사, 산차, 알폰소가 있었고, 이복 형제로 페르난도, 산차, 우라카 라 아스투리아나, 에스테파니아 알폰소 라 데스디차다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알폰소 7세로부터 팔렌시아의 산티아고 델 발 지역을 영지로 수여받은 로드리고 페레즈와 로드리고의 아내인 마리아 데 레자마에게 교육받았고, 아버지가 레콩키스타에 몰두하는 동안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1151년 아버지에게서 '카스티야의 왕' 칭호를 받았고, 형제 페르난두 2세 역시 '갈리시아의 왕' 칭호를 받았다.[1]1155년 바야돌리드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알폰소 7세는 큰 아들 산초 3세에게 카스티야 왕국을 물려주고, 작은 아들 페르난두 2세에게 레온과 갈리시아 왕국을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레온과 갈리시아 왕국에 속해 있던 티에라 데 캄포스, 사하군, 아스투리아스 데 산티아나는 산초 3세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1157년 알폰소 7세가 사망한 뒤, 두 아들은 아버지의 생전 지시에 따라 영토를 분할했다. 1158년 5월 23일, 페르난두 2세와 산초 3세는 사하군 시에서 상호 원조 협약을 맺었다. 두 사람은 서로 힘을 합쳐 무슬림과의 전쟁을 이어가며, 알 안달루스를 정복한 후에는 니에블라에서 리스본까지 레온-갈리시아 연합 왕국이 차지하고 나머지 영토는 카스티야 왕국이 차지하기로 했다. 또한 둘 중 한 명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 다른 한 명이 형제의 영토를 관할하기로 했다.
1158년 8월 31일, 산초 3세는 톨레도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아버지가 묻힌 톨레도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카스티야 왕위는 당시 3살이었던 아들 알폰소 8세에게 돌아갔고, 라라 가문과 카스트로 가문 인사들이 섭정을 맡았다. 그 후 두 가문이 최고 권력을 놓고 내전을 벌이면서 카스티야 왕국은 혼란에 빠졌다.
3. 가족 관계
- 수리아 가르세이츠(1133년 이후 ~ 1156년): 나바라 왕국의 가르체아 라미리츠의 딸. 임신의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 알폰소 8세(1155년 ~ 1214년): 카스티야 국왕.
[1] 알폰소 7세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전히스파니아의 황제로서 가족들에게 왕과 여왕의 칭호를 줬다. 아들인 산초 3세는 '카스티야의 왕' 칭호를, 아들인 페르난두 2세는 '갈리시아의 왕' 칭호를, 사생아 딸인 우라카 라 아스투리아나는 '아스투리아스의 여왕' 칭호를, 자매인 산차 라이문데스는 '인판타-여왕'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