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서 수립한 시국관련 시위전력자의 사법시험 면접 불합격 방침에 따라 10명이 제23회(1981년) 사법시험 3차시험(면접시험)에서 불합격 처리되고 이듬해에 실시된 제24회(1982년) 3차시험에서도 재차 불합격 처리된 사건.[1]2. 피해자
성명 | 사유 | 진실규명결정 당시 및 그 후의 직책 |
신상한 | 78. 9. 13. 유신반대 시위 | 한국산업은행 윤리준법실장. 현 변호사 |
한인섭 | 78. 9. 13. 유신반대 시위 |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 前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
조일래 | 75. 3. 24. 유신반대 시위 | 한국은행 법규실장. 현 변호사 |
정진섭 | 75. 4. 유신반대 시위 80. 5. 개헌심포지엄 주도 | 국회의원. 현 변호사 |
남영찬 | 79. 9. 9. 개헌 심포지움 준비 | 변호사[2] |
한봉희 | 79. 9. 20. 교내 시위 | 변호사[3] |
황인구 | 79. 9. 20. 교내 시위 | SK가스 자원개발본부장(상무). 현 변호사 |
진봉헌[4] | 77. 9. 20. 학교이전반대 시위 | 변호사[5] |
전석진 | 77. 11. 11. 유신반대 시위 | 변호사[6] |
박연재 | 71. 4. 부정선거규탄 농성 | KBS 목포방송국장. 현 변호사[7] |
문제의 면접시험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는 애국심? 한인섭 교수, 사시 면접 탈락의 추억 참조.
3. 진실규명 결정 및 후속조치
피해자들은 2006년 11월 3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고 조사 결과 의혹이 진실로 판명되어 2007년 9월 18일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다.위원회의 구제권고에 따라 법무부는 피해자들 중 사법시험에 다시 응시하여 합격한 4명을 제외하고 정진섭 등 나머지 6명에게 직권으로 합격처분을 하고 2008년 1월 22일 합격증을 수여하였다. 이후 6명 중 5명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변호사가 되었으나 유일하게 한인섭 교수는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지 않았고 대신 서울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자의 길을 가고 있다.
[1] 사법시험은 3차시험에 불합격하면 이듬해에는 3차시험만 다시 치러도 되지만 또 다시 불합격할 경우 1차시험부터 처음부터 다시 치러야 한다. 다행히 이 10명을 제외한 3차시험 연속 불합격 사례는 없었다.[2] 사법시험에 재응시하여 제26회(1984) 시험에 합격.[3] 사법시험에 재응시하여 제26회(1984) 시험에 합격.[4] 現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자 전 여성가족부장관인 진선미의 오빠다.[5] 사법시험에 재응시하여 제28회(1986) 시험에 합격.[6] 사법시험에 재응시하여 제26회(1984) 시험에 합격.[7] 결과적으로 사법시험 사상 최고령 합격자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