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사무엘 제머레이 Samuel Zemurra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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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슈미엘 즈무리 Schmiel Zmurri |
| 출생 | 1877년 1월 18일 |
| 러시아 제국 베사라비아 키시너우 | |
| 사망 | 1961년 11월 30일 |
| 미국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 |
| 국적 | |
| 가족 | 사라 와인버거 (아내) |
1. 개요
바나나맨 샘이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 사업가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일 회사였던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사장이었다.2. 생애
사무엘 제머레이는 러시아 제국 베사라비아 키시너우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91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샘은 삼촌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는 앨라배마주 셀마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바나나를 보았다. 황금빛 녹색 바나나가 부랑자 행상의 물건 더미에 쌓여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낙원의 기운에 매료된 그는 스스로 바나나를 찾아 멕시코만으로 향했다. 제머레이는 모빌에서 제머레이는 과숙될 위험이 있는 값싼 바나나를 사서 철도로 주변 지역에 빠르게 운송하여 판매하였다. 단돈 150달러로 시작하여 21세가 되기 전에 10만 달러를 모았다. 그의 성공은 그에게 "바나나맨 샘"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제머레이가 빨리 돈을 번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상인들이 취급하지 않았던 익은 바나나를 값싼 가격으로 팔아서였다. 제머레이는 자신의 150달러를 투자해 익은 바나나를 소량 구매하고, 철도를 통해 셀마 시장까지 운송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속도, 물류, 시간 관리가 수익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렇게 돈을 번 제머레이는 바나나 무역의 주요 기업인 유나이티드 프루트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후 1900년대 초, 샘은 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에서 바나나 농장과 수출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회사인 Cuyamel Fruit Company를 세우고, 바나나 재배, 수확, 운송, 선적까지 수직 통합 전략을 구사했다. 제머레이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정치적 환경을 조율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제머레이는 온두라스 정부와의 뇌물과 특수 거래를 통해 사업 효율을 높였다. 그러나 1910년, 온두라스 정부는 영국에 진 빚(국채)을 재조정하려 하고 있었다. 미국 국무장관 필랜더 C. 녹스가 이 협상을 주선했으며, 이 협상을 통해 J.P. 모건 & 컴퍼니의 은행 대리인들이 온두라스 세관에 배치되어, 부채 상환에 필요한 세금을 징수하도록 할 예정이었다. 제머레이는 이 세금 집행이 자신의 사업을 망칠까 두려워, 협상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녹스에게 로비를 벌였다. 그러나 녹스는 제머레이에게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았고, 온두라스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 지시에도 불구하고, 제머레이는 온두라스 대통령 미겔 다빌라를 전복시켜 이 협상을 막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용병 리 크리스마스를 모집했고, 크리스마스는 이어서 뉴올리언스에서 약 100명의 용병을 모집했다. 그들은 미 해군의 구함 USS 호넷(Hornet)을 타고 온두라스로 향했고, 망명 중인 전 온두라스 대통령 마누엘 보닐를 재집권시키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 현지 주민으로부터 반군 병력을 모집한 결과, 쿠데타는 성공했으며, 보닐라는 1912년 2월 1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후 보닐라는 쿠야멜 과일 회사 (Cuyamel Fruit Company)를 위해 매우 유리한 세금 및 토지 혜택을 제머레이에게 제공했다.
1913년, 제머레이는 유나이티드 프루트가 소유한 회사 지분을 다시 매입했는데, 이는 미국 정부의 유나이티드 프루트에 대한 독점 금지 압력이 커지면서 가능해진 거래였다. 회사를 완전히 장악한 그는 1915년까지 냉장 창고가 장착된 20척의 선박을 매입하여 사업을 확장했다. 1910년대와 1920년대에 제머레이는 유나이티드 프루트와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었다. 결국 1929년에 제머레이는 쿠야멜을 유나이티드 프루트에 주식 3,150만 달러에 매각하였다.
쿠야멜 매각 이후, 대공황의 여파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사업은 쇠퇴했다. 결국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제머레이는 사장으로 임명할 수 밖에 없었다. 경영진으로 복귀한 제머레이는 미국과 중미의 바나나 제국을 통합하였다. 1953년, 미국 국무부와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과테말라 대통령 하코보 아르벤스가 토지 개혁을 추진하자 CIA와 협력하여 친기업적 정부를 지원했다. 제머레이는 이 과정에서 직접 로비와 전략적 계획을 세웠다. 그 후 쿠데타가 일어나 하코보 아르벤스 대통령은 하야했고,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토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1951년 사장 자리에서 은퇴한 제머레이는 뉴올리언스에서 호화로운 저택에서 거주하였다. 1961년 사망했고 뉴욕타임스는 “고래를 삼킨 물고기(The Fish That Swallowed the Whale)”라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