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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잡지)

파일:뿌리깊은_나무_창간호.jpg파일:뿌리깊은_나무_종간호.jpg
창간호종간호

전 53권 표지와 기사 목차 아카이브

1. 개요

1. 개요

한국브리태니커한창기가 발행했던 월간잡지. 1976년 3월에 창간해서 1980년 8월호를 끝으로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4년 5개월만에 폐간되었다. 그해 정기간행물 전체의 12%인 172종을 폐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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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잡지 역사에 있어 중요한 지점에 있는 잡지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했는데 대부분 이러면 망한다는 투의 암묵적인 룰을 깨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잡지제목이 네글자를 넘으면 안된다는 통념을 가볍게 넘었고, 당시 한자를 포함한 제목을 가진 잡지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처음으로 순우리말로된 제목을 썼다. 당대까지도 한자와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 교양있는 잡지로 여겨졌고 한글만 쓰면 망한다고 생각했기에 이러한 시도는 파격적이었다. 그외 세로쓰기가 대세였던 그 시대에 처음으로 가로쓰기를 도입했고 표지에 무거운 사진을 싣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인텔리, 진보적 지식인을 위한 고급 교양월간지 형태를 갖췄으며 지금 봐도 깔끔하고 세련된 편집디자인과 우리말 (옛스러운) 구어체를 지향하는 문장이 특징이었다. 당시의 대중잡지보다는 훨씬 고급스럽고 창작과 비평류의 무크지보다는 훨씬 대중적인 그 중간쯤 잡지였다고 할 수 있다. 한글만 쓴 것도 남녀노소 불문 접근성을 낮추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이러한 결정이 효과를 봐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구독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일본어 문체가 가득한 유신헌법을 한국 문체로 번역(?)하여 유신반대운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대체로 민중, 지식인 지향의 교양지였는데 특이하게 일찍이 만화에 대한 진지한 비평을 싣기도 했다.(70년대 말에..) 또 일제강점기와 타자기 시대를 그대로 이어받은 옛 한글글꼴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연구를 거쳐 새로운 한글글꼴을 만들기도 했다. 다음에 나올 '샘이깊은 물'에 사용했던 '샘이깊은물체' 줄여서 '샘물체'가 그것.

잡지 이외에도 '민중자서전' 시리즈, '한국의 소리'시리즈(LP,CD), 한국의 발견(택리지와 비슷한 지방별 인문지리지)[1] 등을 펴냈다. 한국의 발견 시리즈는 현재도 헌책방에 가면 몇몇 지방이 빠진채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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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 후 1984년 11월에 다시 여성지 컨셉으로 '샘이 깊은 물'이라는 월간지도 발행하였는데 뿌리깊은 나무와 디자인은 비슷하나 내용은 약간 연성적인 고급 교양여성지였다. 이 또한 2001년 11월호로 폐간.

한마디로 1970년대말의 잡지로서 편집디자인이나 내용면에서 여러모로 특이하고 대단했던 잡지다. 발행인 한창기는 1997년 2월 3일 작고. 브리태니커는 물론 영어학원을 세워 영어교육을 할 정도로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었는데도 한국어에서 일본어와 영어의 잔재를 싫어했으며 나아가 기존 사각틀 글꼴에서 벗어난 한글 글꼴을 연구해 만들고 사용했던 사람. 또한 민중의 입말(구어)를 중시해 빤쓰나 난닝구도 역사성을 인정하여 그대로 표준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그렇게 표기하기도 했다.

한창기의 수집품을 모은 박물관인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순천시 낙안면에 2011년에 개관했다. 내일로든 뭐든 낙안읍성을 들를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러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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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6월호는 7월호와 합본으로 발간되었고, 울고 있는 여자 사진이 표지로 쓰였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달 8월 호를 끝으로 날벼락 같이 폐간 당했다...[2]

2012년 10월 9일 한글날 특집 EBS 지식채널 e에서 방영 소재가 되었다.


[1] 1982년에 발간된 지리지로 1980년대의 지리학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당시의 행정구역을 따라 가나다 순서로 강원도편, 경기도편, 경상남도편, 경상북도편, 부산편, 서울편, 전라북도편, 전라남도편, 제주도편, 충청북도편, 충청남도편이 있었다.[2] 8월호로 끝이다보니까 6월호에 대한 도시전설도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표현할 수 없어서 시계탑이 5시 18분을 가리키는 사진을 표지로 써서 폐간을 먹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냥 도시전설이다. 실제로 시계를 활용한 표지4.19 혁명을 소재로 했던 1978년 4월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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