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빌헬름 안토니 구라 (Wilhelm Antoni Góra) |
생년월일 | 1916년 1월 18일 |
사망년월일 | 1975년 5월 21일 (향년 59세) |
국적 | 폴란드 인민 공화국 |
출신지 | 독일국 비톰 샤를레이 |
포지션 | 하프백 |
신체조건 | 176cm | 73kg |
소속팀 | 스트젤레츠 샤를레이 (?-?) 폴로니아 피에카리 실롱스키에 (1933) 포곤 카토비체 (1933-1934) KS 크라코비아 (1935-1939) DTSG 크라카우 (1939-1941) 하마인 07 (?-1948) VfB 뮐부르크 (1948-1949) |
국가대표 | 16경기 0골 (1935-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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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어린 시절
구라는 비톰(Bytom)에 소속된 작은 마을 샤를레이(Szarlej) 출신이다.2.2. 선수 생활
2.2.1. 클럽
구라는 포곤 카토비체 소속으로 1934년에 엑스트라클라사에 데뷔했지만 이듬해 리그의 강팀 중 하나인 KS 크라코비아로 소속팀을 옮겼다.크라코비아 소속으로 구라는 1회 우승을 경험했지만 1939년, 전쟁으로 커리어가 중단되었다.
2.2.2. 국가대표
구라는 1935년 9월 15일, 라트비아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폴란드는 라트비아와 3대3으로 비겼다.그는 1936년 올림픽에도 참가했지만 노르웨이와의 3위 결정전에만 출전했다. 폴란드는 노르웨이에 패해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구라는 또한 1938년 월드컵 당시 치러진 브라질과의 전설적인 시합에 참가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구라의 국가대표팀 경력 역시 다른 선수들과 같이 전쟁으로 멈추게 되었고 총 16경기 출전의 기록을 남겼다.
2.3.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구라는 축구를 하기 위해 독일 국적 목록(Volksliste)에 서명했고 크라쿠프에 남을 수 있었다. 이때 잠시 크라쿠프의 독일인 팀인 DTSG 크라카우에서 뛰었다.그러다 구라는 독일 국방군에 징집되어 이탈리아 왕국에 끌려갔고 연합군에 체포되었다. 그곳에서 구라는 연합군에 투항했고 폴란드군에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구라는 실롱스크 지방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했다. 슈체친까지 가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소련인들에 체포되었다가 감옥에서 탈출했다. 그 이후 구라는 실롱스크 지방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서독에서 여생을 보냈다.
3. 뒷이야기
4. 수상
4.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