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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部派佛敎 |
영어 | Early Buddhist schools |
Nikāya Buddhism |
1. 개요
부파 불교(部派佛敎)는 불멸(佛滅) 후 100년 이후에 생긴 부파들의 불교이다. 부파 불교 이전까지의 불교는 초기 불교, 원시 불교 혹은 근본 불교라고도 부르는데, 전체 불교 승려가 단일종단이었고 구전 전통을 지켰다. 계율상의 문제로 분열이 일어난 이후부터 부파 불교로 부른다.부파 불교는 니까야 혹은 아가마를 근본 경전으로 사용하고 경장, 율장, 논장을 결집하여 편찬하였다. 경전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내용을 체계화하여 방대한 논서를 집필했기 때문에 아비달마불교라고도 불린다. 부파 불교 시대의 경전은 간다라 문서, 팔리어 경장, 아함경으로 전해진다.
부파 불교의 비구들은 대승 경전을 취급하지 않고 교리 연구와 논쟁에 집중하여 대승 불교 쪽에선 부파 불교를 '소승 불교'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알려졌으나, 근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승 불교가 발전하는 시기에는[1] 명확한 구분 없이 승단이 섞여서 대승 불경을 취급하는 비구들도 부파 불교의 승단에서 같이 생활하였다. 현재와 같은 대승 불교 교단이 성립된 것은 후대의 일이고, 전후를 막론하고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를 겸학하는 곳들에 대한 기록도 많다.#[2] 소승이라는 표현 자체가 대승의 관점에서 기존의 부파 불교를 비하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1950년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선 소승 불교라는 표현은 어떠한 불교 종파에 대해서도 써선 안 된다고 결정하였다. [3]
2. 역사
남아시아의 부파 불교 | |
법장부 | |
설일체유부(보특가라론 제외) | |
보특가라론자 | |
대중부 | |
분별설부(현대 테라와다의 기원, 법장부 제외) |
2.1. 제1차 결집
팔리어 율장에 의하면 불멸로부터 3개월 후, 라자가하(Rajagaha, 王舍城) 밖 칠엽굴(Sattapanni caves)에서 아라한의 경지에 든 비구 500명이 모여 경과 율을 결집하였다.2.2. 제2차 결집
대략 기원전 383년 무렵 계율상의 문제로 바이샬리(Vaishali)에 승단이 모여 율장을 편집하였다. 이를 계기로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하여 부파불교가 시작되었다. 이때에 진보적인 대중부의 비구들이 모여 따로 경전을 결집하였다는 설도 있다. 상좌부와 대중부는 내부에서 다시 분열하여 여러 부파로 나뉘었다.2.3. 제3차 결집
기원전 250년 즈음 아소카 왕이 주최하여 팔리어 삼장이 결집되었다. 이때 결집된 내용은 주로 분별설부(Vibhajjavada) 부파의 교리에 기반했다고 추정한다. 분별설부의 후신이 스리랑카에서 기원한 현재 테라와다이다.한편 아소카 왕은 분별설부를 정통으로 삼고 다른 부파를 이단으로 판정하여 흰 옷을 입히고 추방했다. 이렇게 추방당한 부파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모여서 인도 북동쪽으로 갔는데, 이런 부파들 중 가장 세력이 강한 곳이 설일체유부였다.
3. 상좌부(Sthaviravada)
- 설산부(원상좌부): 후대에 일찍 단절되어 다른 부파보다 먼저 사라졌다.
- 설일체유부(Sarvāstivāda): 부파불교 시대의 가장 유력한 부파로 영향력이 컸다. 대승불교에서 주로 비판한 소승불교는 설일체유부이다. 대표적 논사로는 상가바드라(Saṃghabhadra 중현衆賢)[4]가 있다.
- 분별설부: 현 남방 상좌부 불교(테라와다)와 관련이 깊다.[5]
- 화지부
- 법장부: 서산주부와 더불어 금강경과 관련이 깊은 부파다.*
- 음광부
- 설전부
- 경량부(설경부): 대표적 논사로는 바수반두(Vasubandhu, 세친世親)[6]가 있다. 대승불교 형성에 영향을 준 부파 중 하나로,* 경량부라는 이름은 다른 부파가 경전 외에도 논장(아비담마)의 가치를 격상하는 것에 반대하여 경장만 중시하는 데서 유래하였다.
- 독자부
- 법상부
- 현주부
- 밀림산부: 사나리가부라고도 한다.
- 정량부: 자아는 아니지만 윤회의 주체인 보특가라(뿌드갈라, Pudgala)는 존재한다는 보특가라설을 주장해 다른 부파들로부터 비판받았다.
4. 대중부(Mahāsāṃghika)
- 일설부
- 계윤부
- 설가부
- 다문부: 사피의라는 아라한이 대중부의 학설이 천박하다며 세운 특이한 부파로, 타라나타(1575~1640?)의 불교사에는 설일체유부의 분파로 분류했다.
- 제다부(제다산부, Caitika) - 초기 반야경을 유포한 부파라 추정한다.
- 설출세부
- 제다산부
- 서산주부: 금강경과 관련이 깊은 부파.
- 북산주부
[1] 빨라도 기원후 4세기경, 보통은 기원후 5세기부터로 본다.[2] 한 예로 399년 중국을 떠나 인도로 간 법현이 쓴 <법현전>에는 부파불교(원문에는 소승불교)가 유행하는 나라가 9개국, 대승불교가 유행하는 나라가 3개국, 양쪽을 겸학하는 나라가 3개국이라고 하였고, 현장 삼장(602-664)의 <대당서역기>에는 소승(부파불교) 60개소, 대승 24개소, 겸학하는 곳이 15개소라고 나온다. 더 후대인 기원후 671년 인도에 간 의정(635-713)의 기록 <남해기귀내법전>에선 대승불교와 부파불교의 구분은 대승경전을 읽고 대승의 보살에 예배하는지 아닌지의 여부뿐이라고 하였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심지어 교과서에까지 오랫동안 소승 불교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4] 경량부 교학을 받아들인 세친과 달리 순수 설일체유부 교학을 강조하였다.[5] 현재까지 단일 파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금도 테라와다권의 여러 나라에는 여러 종파가 활동한다.#[6] 원래는 설일체유부 승려였으나, 저서 아비달마구사론을 쓰면서 경량부의 교리를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설일체유부에서 낙오자로 분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