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제주 부씨[1] |
출생 | 1908년 3월 12일[2] |
전라남도 제주군 신좌면 조천리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912번지) | |
사망 | 1944년 7월 5일[3] (향년 36세) |
일본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930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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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부장환은 그의 첫째 남동생이고, 독립유공자 부병각은 그의 7촌 재종숙(再從叔)이다.
2. 생애
1908년 3월 12일 전라남도 제주군 신좌면 조천리(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912번지)에서 아버지 부병익(夫秉益, 1877. 2. 18 ~ 1964. 10. 24)과 어머니 김해 김씨(1877. 7. 5 ~ 1957. 11. 27)[4] 사이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천공립보통학교(現 조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9월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 거주했다.그는 피혁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1931년 6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화학노조 오사카지부에 가입하였다. 1932년 7월 구로주미 고(黑住剛)의 권유로 당시 한국과 일본 사회주의자들이 연계하여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일본공산청년동맹(共産靑年同盟)에 가입하여 일제 타도와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1932년 8월 일본공산청년동맹 중앙위원회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침탈의 날에 전조선 노동자, 청소년에게 보냄'이라는 격문을 제작 및 배포하여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한·일 노동자 청년들의 공동투쟁을 제의하자, 부덕환은 일본공산청년동맹 중앙위원회의 간사이지방위원회 오사카시위원회 남지구(南地區) 산하의 공산청년동맹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33년 2월 체포되었다.
그 뒤 1933년 3월 29일 오사카지방검사국에 송치되었으며, 1934년 6월 18일 대판공소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미결 구류일수 중 320일 산입)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일본에서 은거하다가 옥고의 여독으로 1944년 7월 5일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