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04:00:38

벡델 테스트

Bechdel Test
1. 개요2. 내용3. 오해와 유의점4. 변형

1. 개요

1985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자신의 연재만화 《주목할 만한 레즈들》(Dykes to Watch Out For)[1]에서 고안한 영화의 성평등 평가 방식. 어디까지나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이지만 다른 매체를 볼 때도 적용할 수 있다. 백델 테스트는 신작 영화들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사이트에서 관리되고 있다.#

2. 내용

테스트는 세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이뤄진다.

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한다.
2.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를 한다.
3. 이야기의 주제가 남자에 대한 것 이외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름을 가진 두 여성 등장인물이 남자 이외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단 한 장면만 나오더라도 통과되는 간단한 테스트이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는 영화는 각본 단계에서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무시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일종의 지표라는 것이다.

3. 오해와 유의점

파일:BechdelRule-768x432.jpg

페미니즘의 상업화를 비판한 페미니스트 앤디 자이슬러는 저서 《페미니즘을 팝니다》를 통해 벡델 테스트에 대한 오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벡델 테스트의 시발점이 된 앨리슨 벡델의 만화 《주목할 만한 레즈들》은 본래 레즈비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벡델 본인도 레즈비언이다. 따라서 해당 작품의 캐릭터들은 이성애자 여성들과는 달리 남성이 등장하는 작품에 별 감흥을 못 느꼈고, 그래서 여성 캐릭터의 비중에 따라 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레즈비언들이 영화를 보면서 인물에게 이입을 하려면 해당 캐릭터가 레즈비언이거나, 적어도 레즈비언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가 둘 이상 나올 것", "여자들끼리 얘기할 것", "남자 얘기 하지 말 것"이라는 조건들이 원래 의도한 진짜 함의는 바로 "영화에 나오는 여캐들이 이성애자가 아닐 여지를 부여하기 위함"인 것이다.[2] 그런데 이것이 변질되어 페미니즘이나 작품성을 판가름하는 지수로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 자이슬러가 지적하는 바이다. 자이슬러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작품이라 해서 대부 같은 고전 영화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아니며, 벡델 테스트는 결코 페미니즘 지수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장르에 따라서는 벡델 테스트가 별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다. 단적으로 전쟁 영화게이 영화 등 남자들이 주로 나오는 영화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작가 해나 로진 등이 게이 영화인 파이어 아일랜드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자 벡델 본인이 직접 단서 조항을 달기도 했다.

즉 벡델 테스트는 영화 자체의 만듦새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며, 영화가 얼마나 페미니즘적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반드시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영화에서 여성의 등장이 구조적으로 축소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한국 공포영화의 걸작인 《여고괴담》은 당연히 테스트를 통과하지만, 엄청난 혹평을 받았던 《조선미녀삼총사》 역시 테스트를 통과한다. 또한 슈퍼히어로 영화 가운데에서 손에 꼽는 고평가를 받는 스파이더맨 2,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같은 작품들은 통과하지 못한다. 벡델 테스트는 당연히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완성도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뚜렷한 성편향을 의도한 작품, 즉 남성독자를 대상으로 하며 심지어 여성혐오적 시각이 들어간 작품 중에서도 벡델 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하는 작품이 있다. 이를테면 미소녀 동물원 같은 장르는 그 주제나 작품성이 어떻든 간에 저 기준을 통과 못하는 것이 더 어렵다. 실제로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와 같은 '싸우는 여주인공' 체제의 작품이나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등의 미소녀물은 전혀 페미니즘적 의도가 없다. 하지만, 단순히 남자들이 즐겨 보며 독자들이 여캐들을 보고 불건전한 생각을 한다고 해서 미소지니라고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매체의 내용의 건전성 그 자체뿐이다. 한편 여혐 작품이라고 찍혀서 한참 홍역을 치렀던 뷰티풀 군바리 같은 경우, 여캐들 사이의 입체적인 상호작용을 좋아하는 여성 독자들이 있는데, 이건 벡델 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할 뿐 아니라 의외로 벡델 테스트의 원래 의도된 목적에도 부합하는 사례다. 소꿉친구 둘이 레즈부부가 되어서 딸까지 키우는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시리즈 같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레즈들이 자기들이 볼 작품을 고르기 위해서 고안한 테스트라서 당연히 여성향이성애 로맨스 장르나 로코 장르는 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없다. 작품의 테마 자체가 이성애이기 때문에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애매한 경우로 이를테면, 남성 여성이 고루 포함된 주인공 파티가 이끌어가는 어드벤처 장르의 경우, 남성 주인공, 여성주인공의 목표가 동일하다. 그런데 이 목표에 대한 대사를 평가자에 따라 남성 주인공에 대한 것이라고 보아 탈락시킬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공포 장르 중에서도 여성이 살해당하는 슬래셔 장르는 평가자에 따라 통과되기가 쉬워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주연 파티의 여주1 에미미가 여주2 베키에게 여주3 캘리의 무사함을 묻는 장면은 반드시 등장하기 때문.


미국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 S04E06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까기도 했다(...).

4. 변형

텀블러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는 이와 유사한 변종 테스트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개인이 임의로 고안해낸 만큼 이런 다양한 테스트는 지나치게 단편적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영화 《퍼시픽 림》 의 캐릭터에서 유래한 '마코 모리 테스트(Mako Mori Test)'가 있다. 이것은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을 넘어서, 그 여성이 주제의 핵심에 얼마나 가까이 위치해 있는지를 따진다.[3] 유사한 것으로 켈리 수 디코닉[4]이 개발한 '섹시한 램프 테스트(Sexy Lamp Test)'도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모두 "섹시한 램프"로 바꾸어도 내용 진행과 이해에 문제가 없는지를 보는 것(...).

그 외에도 엘런 윌리스 테스트(Ellen Willis Test)는 등장 인물의 성별을 모두 반전시켜도 이야기가 성립하는지의 여부를 평가한다. '스핑크스 테스트(Sphinx Test)'는 연극에서 여성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는 질적 측면을 파악한다. '비토 루소 테스트(Vito Russo Test)'는 벡델 테스트의 LGBT 버전이다.



[1] dyke는 레즈비언, 특히 부치를 가리키는 영어 속어이다.[2] 위의 원작 만화 내용을 보면,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 뒤 그것을 만족한 작품인 에이리언에 이입해서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에이리언의 주인공 엘렌 리플리가 레즈비언이라는 설정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명시적으로 이성애자라고 밝힌 것도 아니므로, "상상의 여지"가 생긴다. 그 상상을 하는 것이 결국 시쳇말로 백합착즙(...)이다. 다만 레즈비언 본인이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성이 있는 것이다.[3] 정작 이 테스트의 주인공인 마코 모리후속작에서 허무하게 사망해버린다.(...)[4] 만화가로 마블 코믹스캡틴 마블을 재창조한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