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7 10:16:41

백능파

구운몽의 주요 등장인물
현실 성진 팔선녀
몽환 양소유 진채봉 계섬월 정경패 가춘운 적경홍 이소화 심요연 백능파

1. 개요2. 특징3. 작중 행적4. 기타

1. 개요

저의 더러운 몸군자께 허락한 지 오래이나 지금 바로 군자를 모시는 것은 세 가지 이유로 옳지 아니하오이다. 하나는 아직 부모께 여쭙지 못하였으니 여자가 남자를 따르는 일을 이렇게 구차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고, 둘째는 앞으로 사람의 몸을 얻어 군자를 섬길 터인데 지금 비늘과 지느러미 돋은 몸으로 잠자리를 모시는 것이 옳지 않고, 셋째는 남해 태자가 항상 사람을 보내어 이곳을 염탐하니 사악한 계교로 한바탕 요란한 일이 벌어질까 염려됩니다.
白凌波.

이 문서는 한국 고전소설 <구운몽>의 등장인물인 백능파를 소개하는 문서이다. 백능파는 팔선녀의 환생 중 한 명으로 동정호 용왕의 딸이다.

2. 특징

구운몽의 마지막 히로인으로 이제 꼬실만한 인간은 다 꼬신 양소유가 환상종한테까지 손을 뻗는다(…). 유의전(柳毅傳)[1]에 나오는 동정용왕의 공주와 자매 사이라는 설정, 이쪽이 동생이다. 프리퀄

3. 작중 행적

토번을 정벌하러 온 양소유가 반사곡이란 장소에 들어왔다가 적군에게 포위되어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시녀를 보내 그를 자신의 거처인 백룡담[2]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본인은 동정 용왕의 막내딸 백능파로 어린 시절 상제한테 조회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 천계에 갔다가 장진인(張眞人)에게 '너는 전생에 선녀였고 지금은 용으로 태어났지만 나중에 사람이 된다. 그리고 아주 귀한 사람의 첩이 되어 일생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고 불가로 되돌아 갈 것이다.'라는 예언을 듣는다. 언니가 유의와 재혼하고 친척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백능파는 그보다 더 출세할 팔자라니 다들 축하해줬다고.

그런데 백능파의 미모에 대해 들은 남해 용왕의 아들 오현이 지 애비를 통해서 그녀에게 청혼을 넣는다. 남해 용왕은 동정 용왕의 상관격이었는지라 대놓고 청혼을 거절하기 어려워서, 동정 용왕은 장진인의 말을 전해주면서 우리 애는 이미 임자있다고 설득하지만 남해 용왕은 아들 편을 들어 그 말을 씹고 혼사를 강행하려 든다. 백능파는 자기 때문에 집안이 피해보는 게 싫어서 반사곡으로 도망치고, 얀데레 기질이 있는지 오현은 그녀를 쫓아와 괴롭히고 군사를 거느려 무력시위를 한다. 빡친 백능파는 백룡담의 물을 지옥같이 차갑고 깊게 만들어 버려 스토커 같은 오현을 차단한다.[3]

그동안 쌓인 서러움을 털어낸 백능파는 '이제 낭군을 만나 괴로움이 풀렸으니 백룡담의 물맛이 원래대로 돌아갈 거고, 병에 걸린 사람도 고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미녀를 만난 양소유는 낭자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하늘이 정한 인연이니 아름다운 기약을 이제 감히 정하지 않겠소?라며 인연을 맺고 싶어하지만, 백능파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서 양소유의 제안을 거절한다. (상단에 서술됨) 그러나 양소유는 포기하지 않고 이유 3가지를 반박한다. 능파가 이곳으로 피난온 것부터가 자신과 맺어지는 것을 내다본 용왕의 뜻이며, 신성한 존재인 용으로서 비늘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고, 남해의 불한당이 덤벼온다면 퇴치하면 그만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준다. 그리고는 청풍명월의 밤을 함께 보낸다.

집념의 스토커 오현은 백능파가 양소유에게 넘어가자 머리 끝까지 열받아서 대군을 이끌고 백룡담을 공격하지만, 양소유한테 바로 제압당해버린다. 소설 분량 상으로도 한 단락만에 처참하게 패한다(...) 그 다음엔 찍소리도 못하고 퇴장. 남해로 돌아간다.

백능파는 그 뒤로 등장이 없다가 양소유가 월왕과 낙유원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을 때 심요연과 함께 재등장한다. 양소유와 월왕이 한창 미녀 배틀을 벌이고 있었는데 월왕 쪽은 빼어난 미녀가 넷에 양소유 쪽은 계섬월과 적경홍 둘만이 있는 상황이라 불리했는데, 그때 극적으로 나타나서 양소유에게 가세한다. 심요연이 검무를 춘 다음 상령곡(湘靈曲)[4] 을 연주하여 승리에 기여한다. 다만 넘사벽의 포스를 보여준 심요연과 다르게 만옥연[5]에게 자기 연주를 복사당하는 굴욕을 당한다.

연회가 끝난 뒤엔 양소유를 따라가 정실 부인들한테 인사를 올리고 정식으로 양소유의 첩이 된다. 다른 부인들이 몰래 와서 요술을 보여달라고 조르는데, '이제 인간이 돼서 못한다' 라며 거절한다. 사람이 되면서 용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4. 기타

종종 백능파의 이야기가 남해 용왕의 아들에게 정조를 위협받던 백능파가 양소유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라는 식으로 와전되는 경우가 있는데, 백능파는 양소유한테 구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단지 운명의 상대인 양소유를 만나 언약을 맺으려 했을 뿐이다. 오히려 전쟁을 수행 중인 양소유에게 오현의 일이 짐이 될까봐 우려하며, 양소유가 먼저 돌아가면 나중에 알아서 찾아가겠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오현의 위협을 받고 있는 백능파가 담담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에게 확실한 보호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백능파의 아버지인 동정 용왕은 당나라 전기 유의전에 나오는 동정 용왕과 동일 인물로, 그의 아우(백능파의 숙부)가 바로 희대의 양아치 전당군이기 때문이다.

전당군은 본래 전당강의 용왕이지만, 포악한 짓을 일삼아서 자기 직위를 잃었다. 몸길이가 천 척(약 300m)에 번쩍이는 두 눈, 피빛 혀, 붉은 비늘과 불타는 갈기를 가진 용으로 날아갈 때 천 개의 번개와 만개의 벼락이 그 몸을 에워싸고 눈과 우박이 한꺼번에 내린다는 묘사가 있다. 유의전에서 전당군은 요(삼황오제) 시대에 9년 간 홍수를 일으키고 천계의 장군과 시비가 붙어 중국의 오악[6]을 물에 잠기게 하는 등 무지막지한 행패를 부렸고, 그 죄로 동정호에 묶여 있었다. 묶여 있긴 하지만 날뛰고 싶으면 날뛸 수도 있는 모양.

실제로 자신의 조카(용왕의 딸)가 시가(媤家)에서 학대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주인공인 유의가 알려준다) 분노하며 스스로 사슬을 끊고 날아가 경하 용왕의 영토를 단시간에 초토화시키고 조카와 함께 돌아온다. 이때 전당군한테 60만 명이 몰살당하고 800리 농토의 작물이 상했으며, 동정용왕의 딸을 학대한 경하용왕의 둘째 아들은 잡아먹힌다. 전당군 왈, 일을 벌인 직후에 바로 상제에게 고했더니 다행스럽게도 정당방위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벌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예전에 받았던 벌까지 사면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위의 이야기는 유의전에 나오는 내용으로, 본작 구운몽에서도 여전히 막강한 위용을 떨치고 있는 듯 하다. 남해 용왕이 지위를 이용해 압박하거나 무력 시위를 벌이기는 하는데, 억지로 백능파를 끌고 와서 결혼시키지는 못한다. 백능파 쪽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전당군을 부르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왜 진작 전당군을 부르지 않고 참는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전당군의 성격이 워낙 다혈질이고 친족들을 아끼는 성격이라서 오현에게 겁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명계로 보내버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지은 죄가 많으니 또 날뛰지 않게끔 친족들이 백능파의 소식을 전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유의전에서도 공주의 소식 때문에 궁궐이 울음바다가 되자 동정 용왕이 전당군이 듣는다고 쉬쉬하는데, 아니나다를까 결국에는 전당군이 들어버렸고 바로 뛰쳐나간다.

양소유 역시 백능파를 제대로 대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으며, 농담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성 높은 일이다. 고전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각종 주인공 보정을 받으며 수많은 요괴나 신수를 때려잡지만, 용왕 정도 되면 급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주인공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용왕은 옥황상제 휘하의 관리직이자 물을 다스리는 고위 신령이다. 지천에 널려 있는 잡스러운 요괴들과는 달리, 아무런 명분 없이 싸움을 걸면 옥황상제와 하늘에게 반기를 드는 꼴이다. 그래서 고전소설 주인공들이 용왕급의 신을 벌줄 때에는 그들이 먼저 죄를 지은 경우가 많다. 고전소설에서 주인공이 요괴를 벌줄 때는 언제나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용왕 정도 되면 더욱 확실한 우위가 필요한 것이다.

고전에서 인간 주인공이 용왕을 잡을 때에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아이템이 있든가, 하늘의 도움을 받곤 한다.[7] 혹은 주인공의 전생이 용왕 따위 우스울 정도로 높은 신분이든가.[8] 아예 주인공 스스로 제갈량이나 관우처럼 널리 이름난 신령일 때도 있다.

양소유는 이 중에서 해당되는 것이 없다. 전생은 일개 불제자 성진이고, 천계의 고위층과 특별한 연줄도 없다. 그나마 내세울 만한 것은 천자의 명을 받아 위징이 경하의 용을 벨 때 썼던 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정도. 반면 전당군은 일반적인 용왕들과 달리 천계의 신[9]들조차 제대로 제어 못한 대요괴급 괴수라서 양소유는 상대가 안된다. 구운몽 본작에서도 유의전의 일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전당군은 여전히 강할 것이다.[10]

백능파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에서 시작된 긴 추측이지만, 결론적으로 백능파에게 잘 대해야 하는 건 맞다. 사실 본작에서 양소유는 전당군을 만난 적도 없고, 설령 만나더라도 고전소설의 클리셰가 곧이곧대로 적용될지는 모르는 일이다.[11] 그래도 유교적 세계관에서 주인공 보정은 대의명분과 도덕성에 기초를 둔다는 점이 중요하다.

주인공 보정을 받으려면 양소유가 먼저 잘해야 하며, 애초에 항렬을 따져봐도 전당군은 양소유의 처숙부가 되기 때문에, 전당군이 강하든 약하든 양소유는 웃어른을 대하는 태도로서 대해야 한다. 따라서 만에 하나 양소유가 백능파를 핍박한다면, 주인공 보정은 다 사라지고 오히려 역보정을 받을 수 있다. 거꾸로 백능파가 칠거지악을 범하며 정당성이 양소유에게 넘어간다면 이것이 보정으로 작용해서 전당군을 이길지도 모르는 것이다.

[1] 당나라 때 전기소설. 유의라는 서생이 경하 용왕의 둘째 아들에게 시집왔다가 핍박받고 있는 동정 용왕의 공주를 만난다. 유의는 공주의 힘든 사정을 친정에 전해주어 도와주고 훗날 이때 인연으로 그녀와 부부로 맺어지고 신선이 된다.[2] 반사곡에 있는 연못으로 원래 이름은 청수담. 이름에 걸맞게 맑은 물로 유명했지만 백능파가 숨어들면서 마시기만 하면 온몸이 파랗게 질려 죽어가는 독물로 변하고 이름도 백룡담으로 바뀌었다. 양소유는 병사들 중 일부가 이 물을 마시고 병에 걸려서 골머리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3] 설명할 때는 천지가 자기의 절개에 감동해서 저절로 변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자기 맘대로 원상복구 시킬 수 있는 걸 보면 백능파의 능력이 맞는 것 같다. 히로인들 중 유일한 초능력자 속성인 듯.[4] 요(삼황오제)의 딸이자 순(삼황오제)의 부인인 아황과 여영의 곡. 인간들 사이에선 실전됐지만 백능파는 집 근처에 있는 아황과 여영의 묘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를 어린 시절부터 듣고 익혔다고 한다. 그녀의 연주에 주변이 봄빛을 잃고 가을처럼 변했다고 묘사된다.[5] 양소유의 첩인 계섬월, 적경홍과 함께 청루삼절이라 불리는 기녀. 이쪽도 양소유의 첩들한테 안 꿇리는 능력자다.[6] 이 오악 중 하나가 형산으로, 양소유의 전생인 성진이 육관대사를 모시며 수행하던 장소이다.[7] 서유기에선 위징이 하늘의 명을 받아 경하용왕을 참수한 일이 나온다. 이 설정이 구운몽에도 나오는데, 양소유가 오현한테 자기 검을 보여주면서 '이게 위징이 경하의 용을 벤 검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8] 구운몽과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소현성록의 주인공 현성은 도교의 최상급신인 영보도군의 환생이다. 그래서 용왕을 상대할 때 자신의 위엄만으로 용왕을 제압하고 태형을 때렸다.[9] 하늘에서 상제를 직접 보좌하는 천신들은 용왕처럼 하계에서 노는 신들보다 월등히 격이 높고 강하다.[10] 양소유가 오현을 물리친 뒤 용왕이 기념 연회를 베풀며 성대한 공연을 보여준다. 양소유가 이 곡이 무엇이냐고 묻자 용왕이 '나의 아우 전당군이 경하를 박살내고 돌아온 걸 기념하는 곡으로, 전당파진악, 귀주환궁악이라고 부르고 있소. 그대가 이번에 한 일도 그때를 방불케하니 이름을 고쳐 원수파진악이라고 하면 어떻겠소?' 라고 이야기한다. 애당초 백능파 에피소드 자체가 유의전에서 따온 걸로 추정된다.[11] 만약 작가가 양소유를 최강으로 설정해버리면 전당군이든 누구든 다 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