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14:01

박희열

성명 박희열(朴喜烈)
일본식 성명 松原俊卿, 松原俊鄕
이명 박희열(朴熙烈)
본관 밀양 박씨
생몰 1920년 12월 4일 ~ 1945년 1월 10일
출생지 경상북도 상주군 외남면 구서리[1]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희열은 1920년 12월 4일 경상북도 상주군 외남면 구서리에서 태어났다.

1932년 일본으로 건너가 효고현 이타미시 사쿠라가오카(桜ヶ丘)에 있는 친형의 집에서 친형과 함께 살면서 1938년 3월 이타미시립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40년 2월 오사카 부립 기타노(北野)제2중학교 야간부에 입학하고 직공·인부 등으로 일하며 고학하였다. 이때 점차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에 대해 반감을 품던 중, 동급생 정승한(鄭承漢) 등을 만나 교류하면서 점차 민족의식을 깨닫게 되었다.

1942년 4월 오사카 히가시요도가와(東淀川)구에서 정승한을 만나 한국 독립을 위해 단체 조직과 동지 규합에 노력하자는 취지의 말을 듣고 찬동하였으며, 같은 해 5월 초 다시 그를 비롯한 동지 5명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모임을 갖고 항일비밀결사 백두회를 조직하였는데, 백두회는 기타노제2중학교 3·4학년인 한국인 학생을 회원으로 하여 독립에 필요한 자질 함양과 한국 사정 연구를 목적으로 하였다.

이들은 같은 해 7월 중순 한국 독립을 위한 구체적 방침을 협의하였고, 10월 중순에는 백두회 회원 명부 제작을 의결하였으며, 12월 말에는 회원 간 상호 연락, 단결 강화 문제 등에 대해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44년 2월 26일 체포되었다.

박희열은 1944년 5월 24일 대구지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아# 이에 공소하였으나, 7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재차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다#. 이어서 그는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1월 10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201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