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바실리 오솁코프 Vasili Oshchepkov | |
본명 | 바실리 세르게예비치 오솁코프 Василий Сергеевич Ощепков Vasili Sergevich Oshchepkov |
출생 | 1893년 1월 7일 |
러시아 제국 사할린 섬 | |
사망 | 1937년 10월 10일 (향년 44세) |
소련 러시아 SFSR 부티르카 감옥 | |
국적 | [[소련|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유도 선수, 무술인, 군인 |
학력 | 도쿄정교회신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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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무술인. 삼보의 창시자이다.2. 생애
러시아 제국 사할린섬 출신으로 아버지는 1902년 사망했고 러일전쟁의 패배로 인해 사할린이 일본으로 넘어가게되었고 11세때 어머니도 사망하자 고아가 되어 도쿄로 건너와 니콜라이 이반 카시트힌 주교가 운영하는 정교회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가노 지고로의 강도관에서 유도를 수련했으며 1913년 1단을 수여받고 러시아로 귀국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최초로 유도 체육관을 열었으며 반면 러시아 제국의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1917년 일본에 재입국해 러시아vs일본 유도 대회를 개최했으며 귀국전 강도관에서 2단을 수여받았다.1920년 러시아 내전 당시 적군 소속이 되었고 당시 백군을 지원하던 일본에 파견되어 간첩활동을 수행했고 타 정보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임무를 맡았다. 1926년 귀국해 유도를 홍보하는 반면 유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무술을 연구하는데 힘썼다. 1929년 노농적군의 유도 교관, 국립중앙체육연구소의 교수로 임명되었고 근접 격투술을 담당했다. 이에 레슬링, 쿠라쉬, 부흐 등 여러 그래플링 무술을 유도와 혼합시켜 군용 무술을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삼보이다. 1932년 첫 대회를 열었고 소련 전역에 지부를 만들어 전파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심장이 안좋아져 니트로글리세린을 복용하고 있었으며 1937년 대숙청이 시작되자 당시 일본에 정보원으로 있어 일본을 위한 간첩행위를 한 혐의로 그를 포함한 지인, 제자들까지 체포되었다. 부티트카 감옥에 수감되어 고문은 받지 않았지만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고 체포된지 10일 후 유죄판결을 받기 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다른 제자들은 혐의가 유죄판결이 되어 총살형에 처해졌다.
1957년 부인인 안나 이바노브나의 노력으로 무혐의 처리가 되어 복권되었다.
3. 여담
- 3번을 결혼했다.
- 권투를 좋아해 주말마다 권투경기를 관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