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성군 순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명성황후(明成皇后)에서 모티브를 따왔다.이형의 정실 왕비이자 주인공 강백산의 빙의체인 순종의 어머니이다.
2. 작중 행적
살아남은 유일한 자식인 이척에게 강백산이 빙의해 잠깐 쓰러지자 무당을 불러 무속 행위를 하는 등의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처음 언급된다. 무속을 깊이 신봉하고 있으며 고종과는 부창부수의 모습을 보인다. 이 아줌마도 답 없는 건 매한가지지만 고종은 아들이 잘난 모습을 보이면 조선 군주의 특성상 다른 아들을 갈아치우려 들 테지만 명성황후에게는 살아남은 아들이 이척 하나밖에 없고 이제 아들을 더 가지기는 힘든 나이이기 때문에 남편과 아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들을 선택할 사람이라고 한다.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민겸호가 잡혀 죽기 전 도망치라는 연락을 받아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충주로 도망쳤다. 장마철에 모기가 창궐하는 산과 강을 넘다 보니 말라리아를 비롯한 여러 질병에 걸려 골골거리다[1] 순명효황후의 아버지인 민태호가 강화유수 일을 핑계 삼아 도와주지 않자 히스테리를 부리다가 숨 넘어갈 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세자의 상황을 전해 듣고 대략적인 상황을 깨달아 여흥 민씨 척족에게 세자를 보위하며 세를 유지하라 지시하고 주저 없이 남편을 버린다. 물론 고종도 명성황후를 잘 알아서 명성황후가 자신을 버린 걸 바로 알아차리고 히스테리를 부렸다.
임오군란을 정리할 때 온양행궁으로 처소를 옮겨 떵떵거리며 지냈지만, 세자가 민씨 일족 중의 탐관오리를 쳐내는 개혁을 펼치자, 고종이 아들을 욕받이로 내놓고 외척(민씨)을 숙청중이다라고 오해할 수 밖에 없는 구도인 탓에 세자의 앞길에 도움 안 되는 멍청한 민씨는 우리가 먼저 잘라내고 세자를 돕자라고 절규한다. 대원군도 수원화성에 칩거 중이고 고종도 민씨 일족을 어느 정도 견제하는 탓에 1883년 초까지는 온양행궁에서 사실상 유배 중이다. 이후 갑신년이 되자마자 고종이 다시 불러들이지만 민비를 견제하기 위해 아직은 서울 행정구역이 아닌 시흥행궁에 배치하고 대원군을 운현궁에 불러들인다.
이후 한동안 시흥행궁에서 유배생활을 보내다 병술년이 되자 세자가 고종 찬양 법회를 비롯한 연회를 열면서 '이 정도면 어머니를 들여보내도 되지 않겠습니까?' 라는 암시를 줘서 복궐하게 된다. 야사를 따르면 해가 진 후 입궐하라길래 절규했는데 가로등으로 환한 것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환궁 후 불교계가 중전의 후원을 받아 도성에 법당도 세우고 법회도 열고 있다.
그러나 오직 환궁만 했을 뿐 여전히 찬밥 신세고 세자와 세자빈 사이에서 나온 손주를 통해 권세를 되찾으려던 계획도 세자가 경장으로 바쁜 나머지 여자에는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무위로 돌아가게 생기자 "내명부의 여관들 또한 나라의 녹을 먹는 관원인데 마땅히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세자에게 묻는다. 원래는 지금 이 일을 공론화하기 싫으면 더 귀찮게 하기 전에 빨리 손주를 보여달라며 세자를 압박하려는 의도였으나 민자영의 말을 들은 강백산이 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던 여성 참정권에 대해 떠올리고 민자영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면서 다시 드러눕는다.
이후 고종이 어보를 세자에게 던졌다는 사실, 그리고 모두의 입을 막아 없던 일로 하려는 것을 알고는 세자의 이마의 출혈을 막았던 천을 가져와 민영에게 쥐어준 뒤 대리청정 이후로 왕이 그것을 거둬가면 벌어질 일은 숙청밖에 없다며 세자와 세자의 아이를 죽이고 싶지 않다면 이를 잘 활용하라는 말과 함께 조용히 돌아간다.[2]
강백산이 황후 외에 첩을 두지 않겠다고 한 뒤, 이에 관련된 조언을 구하다가 내명부에 소속되었거나 출궁한 궁녀들의 재가 허용에 관해 허가를 받으려 하자 궁녀들의 자식들을 황족과 같이 교육시킬 새로운 교육기관을 만들라는 조언을 한다.[3] 다만 독자들 평은 이걸 핑계삼아 고종에게 승은을 갈구하는 눈꼴 시린 궁녀들을 내쫓을 기회라 여겨 흔쾌히 허락한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4] 고종과는 이미 부부관계가 파탄난 상태이나, 강백산과의 사이는 모자간이라는 점도 있고, 강백산도 딱히 민자영을 거부하지 않고 존중하고 있는데다가 민자영이 권력을 위해 내놓는 수단이 하나같이 여성인권 신장이라는 측면을 의도치 않게 유도하고 있어서 모자 사이는 나쁘지 않고 황실의 큰어른으로서 입지가 높아지고 있다.
이하응과 이형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을 전달 받은 뒤 두 사람을 다 한심히 여기면서 이형이 들어간 수강궁의 모든 첩보를 전부 입수하고 이를 황후인 민영에게도 전달하게 한다. 또한 이형 주변에 러시아가 접근해 있으니 이형 본인이 무언가 하는 것은 직접적인 반란이 아니라면 모른척 하되 러시아에 관한건 모조리 알아오라며 러시아어를 잘하는 뛰어난 미색을 가진 여인들을 수배해 정보를 모으는데 집중한다.
사실상 이형이 혜화학궁에 유폐된 신세가 되자 도주하거나 딴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중이다. 정신을 놓으면 옆구리를 치거나 도망치려하면 손자인 이은이 가지고 노는 바둑돌을 맞춰서 막는 식. 덕분에 손자와 잘 놀아주는 할머니 역할도 하는 중.
이후 이강이 보낸 전보를 융희제가 답변하며 제수씨를 어머님께 보여 달라는 언급과 김홍집이 비테와 회담에서 대한과 전쟁을 치른 적국의 공주와 사실상 납치혼을 당했다는 것에 진노했다는 언급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 다음화에 곧바로 희희낙낙하고 있다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하응은 봉선의식 이후 쓰러졌고 이강은 외국 황녀와 결혼했으니 절대 반정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동시에 손자인 이은이 융희제 강백산은 바빠서 찾아가기 어렵고 이형은 찾아가면 태사가 기함을 하다보니 누구보다 편하게 찾아올 수 있다고 하여 무척이나 기뻐한다.
하지만 이후 이은이 융희제가 대승을 거뒀음에도 기뻐하지 않는지 묻자 그를 민자영 자신에게 빗대어 마음을 알아줄만한 대등한 사람이 없는 것이 이유일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설명해도 이은이 알아들을 리는 없으니 이은이 조금 더 자주 찾아뵈라는 조언을 해준다.[5]
3. 기타
여태까지의 한국 대역계에서 명성황후는 아예 갱생을 하거나 파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본작의 민자영은 친아들이 주인공인 것의 영향으로 인해 딱히 갱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잘 만나서 호강하며 잘 살고 크게 사고 치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가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친아들이 주인공인 덕분에 갱생을 안 해도 주인공에게는 든든한 조력자인 게 포인트.작중 초반에 무속 행위가 언급되지만, 본작에서는 아들이 빙의의 여파로 건강해진 덕분에 무속에 의존한 필요가 없어져서인지 이후에는 특별히 무속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치스러운 성격도 조선 시대 마님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아서 부유해진 대한민국의 재력으로는 충분히 감당 가능하고, 자신의 친아들과 손자를 위해 힘쓰다 보니 특별히 사고 치는 일 없이 무난하게 태후로서 잘 살고 있는 중. 독자들은 이쪽이야말로 진정한 명성황후 해피엔딩 아니냐는 평을 내리고 있다.
[1] 조선 토종 말라리아라서 아프리카산 말라리아보다는 치사율이 낮고 후유증도 덜하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 잡은 병이다.[2] 이미 조선왕조에서 소현세자 사후 그 세손들과 세자빈을 숙청한 인조,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의 사례가 있으며 고종의 아내로서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이형을 지켜봤기에 이형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누구보다 잘 아는게 민자영이기도 하다.[3] 그 와중에 선황은 너무 호색한이라 문제인데 태황은 그 반대라 문제라며 슬그머니 고종을 깐다.[4] 당장 해당 에피소드에 여성들만 교육받는 교육기관을 만들자고 하며 정한 교육정책이자 해당 에피소드 제목이 순애다.[5] 그와중에 융희제가 가장 기뻐했던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 묻자 이형에게 권력을 빼앗았을 때라는 답을 하자 이형이 대체 아이에게 뭘 가르친 것이냐며 속으로 화를 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