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882~1951일제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군인. 본관은 여흥.[1]
2. 삶
1882년 7월 9일 한성부에서 민영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899년 호위대 참위를 거쳐 1900년 시위 제1연대 제2대부에 배속된 걸 시작으로 육군 부위, 정위, 참령을 거쳐 1905년 12월 휴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1906년 4월 귀국했다.귀국 후 민영휘가 설립한 휘문의숙에서 교편을 잡았다. 1909년 백인기, 안국선 등과 함께 부국직물합명회사를 설립하고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10년 제마회사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1911년 윤치소 등과 함께 경성에 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취체역을 맡았다.
1920년 한일은행 취체역(이사)을 거쳐 두취(은행장)가 되었다. 1930년 한일은행과 호서은행을 합해 동일은행을 창설하고 대표취체역을 맡았다. 1924년 동민회 평회원이 되었다. 1930년 경기도 관선 도평의원이 되었다.
대일본맥주가 1933년 8월 9일 설립한 조선맥주의 창립주주로 참여했고, 동년 10월 조선맥주주식회사의 취체역[2]에 취임했다. 조선맥주는 1945년 미군정의 귀속재산이 되면서 민대식의 장손인 민덕기를 관리인으로 하였다가, 1952년 적산 불하시 민덕기에게 귀속되었다.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조선신궁봉찬회, 조선유도연합회등에서 활동했으며 각종 헌금을 많이 내기로 유명했다.
1951년 11월 17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