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시즌 참가 구단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2px -12px" |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00; font-size: 0.8em"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ffed00; font-size: 0.8em" | |
| | | | | |
| | | | | |
| | | | | |
| | | | | |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B 참가 구단 ▶ | ||||
| | ||||
| 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 ||||
| | |
| 미라소우 FC | |
| Mirassol FC | |
| <colbgcolor=#ffed00><colcolor=#13a040> 정식 명칭 | Mirassol Futebol Clube (미라소우 푸치보우 클루비) |
| 별칭 | Leão da Alta Araraquarense (알타 아라라콰렌세의 사자) |
| 창단 | 1925년 11월 9일 ([age(1925-11-09)]주년) |
| 소속 리그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Campeonato Brasileiro Série A)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Campeonato Paulista) |
| 연고지 | 상파울루주 미라소우 (Mirassol) |
| 홈구장 | 캄푸스 마이아 (Estádio Municipal José Maria de Campos Maia) 15,000명 수용 |
| 회장 | 에드송 에르메네지우두 (Edson Ermenegildo) |
| 감독 | 하파에우 과나이스 (Rafael Guanaes) |
| 수석 코치 | 이반 바이텔로 (Ivan Baitello) 하이네르 올리베이라 (Rainer Oliveira) |
| 주장 | 다니엘지뉴 (Danielzinho) |
| 역대 한국인 선수 | 김현솔 (2020[임대], 2023~ ) |
| 공식 웹사이트 | |
| 우승 기록 | |
| 세리 C (3부) (1회) | 2022 |
| 세리 D (4부) (1회) | 2020 |
| 캄페우나투 파울리스타 세리 A3 (1회) | 1997 |
1. 개요
미라소우 푸치보우 클루비(Mirassol Futebol Clube)는 1925년에 창단한 브라질 상파울루주 미라소우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이다. 구단의 상징색은 노랑과 초록이며, 상징물은 사자이다.2. 역사
1925년 11월 9일 미라소우 이스포르치 클루비라는 이름으로 창단하였다. 1960년 미라소우에 또다른 축구팀 그레미우 헤크레아상 이스포르치 쿨투라 미라소우가 창단하였고, 두 팀은 1963년까지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이 후 두 팀은 병합되었고, 구단 명칭은 미라소우 아틀레치쿠 클루비로 변경되었다. 1982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1997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A3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20년 세리 D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첫 전국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24년 세리 B 2위를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세리 A 승격에 성공했다.
3. 여담
현재 K리그에서 활약 중인 펠리페, 모따, 파울리뇨 등이 이 팀 소속이 있다.[2]일본의 대표적인 국가대표 수비수였던 툴리오가 일본으로 가기 전 잠시나마 유소년팀에서 뛰기도 했다.
팀 회장인 Edson Ermenegildo는 미라소우의 시장이다.[3] 회장은 직함만 걸어 놓은 것이며, 실질적인 운영은 주니오르 안투네스(Júnior Antunes) 미라솔 FC의 부회장이자 CEO로, 구단의 실질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그는 지역에서 슈퍼마켓 체인(Redesol)을 운영하는 기업가로서, 지역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라소우 FC는 시의 재정 지원을 일절 받지 않는다. 아주 과거에는 지원을 받았지만 현재 구단은 선수 육성과 자체 수익 창출을 통해 재정 자립을 이루었고[4] 이 결과로 100년만에 1부 리그로 승격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