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5:20:17

모테트

1. 개요2. 중세의 모테트3. 르네상스기의 모테트4. 바로크 시기 이후의 모테트

1. 개요

모테트(motet)는 중세 유럽에서 기원한 다성음악 양식으로 서양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모테트의 어원은 라틴어의 movere(to move, 움직이다) 또는 이 단어에서 기원한 프랑스어 mot(word, 단어)에서 유래하며, 처음에는 다성음악에서 가사를 가진 성부(motetus)를 가리켰는데 후에는 가사를 가진 다성음악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 모테트는 종교음악과 세속음악 영역 모두에서 작곡되었고 바로크 시대를 거쳐 고전파 시기까지도 창작되었다. 초기의 모테트에서 수행되었던 많은 음악적 실험들은 후대에 대위법의 모태가 되었다. 모태

2. 중세의 모테트

중세의 모테트는 초기의 다성양식인 오르가눔(organum)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오르가눔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을 정선율(cantus firmus)로 하고 그 위에 다른 선율과 다른 가사를 가진 성부(discant)를 추가한 초기 다성양식이었다. 처음에는 그레고리오 성가 정선율 위에 정선율의 가사 내용을 설명하는 내용이나 관련 라틴어 성경구절 덧붙였는데, 이후에 정선율의 주제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가사들이 수반되었다. 가사는 종종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작성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정선율 위에 종교시와 세속 연애시가 동시에 진행되는 다소 엽기적인 구성의 음악이 창작되기도 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작곡할 경우 성부가 많아지면 가사를 알아듣기 어렵게 되고 곡이 매우 산만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1]

하지만 이런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이 후에 세속 모테트를 비롯한 다양한 다성음악 양식의 기원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공부하고 적용하는 대위법의 먼 기원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한편 이와 같은 다가사 낭창(polytextual song)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부 또는 전체 성부를 아이소리듬(isorythm)으로 작곡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는데, 이 아이소리듬은 일정한 리듬패턴이 반복되는 형태의 작법이다. 이 아이소리듬의 개념을 최초로 음악으로 구현한 작곡가가 14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활동한 필립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였는데, 그의 작법은 중세의 가장 뛰어난 모테트 작곡가였던 기욤 드 마쇼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이소리듬은 초기에는 주로 느린저음을 담당하는 테너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후에는 전체 성부로 확대 적용되기도 했다.


필립 드 비트리의 모테트 Tuba sacre fidei / In arboris / Virgo sum이다.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은 세 성부가 각각 Tuba sacre fidei, In arboris, Virgo sum이라는 제목의 가사를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개의 성부 중 테너 성부에는 서두에 곡의 제목만 씌어 있고 가사가 없다.[2] 이 테너 성부는 곡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보통 음역대가 좁고 긴 지속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가사를 붙이기 어렵다.[3] 위 모테트에서도 테너 성부에 해당되는 Virgo sum은 가사가 없다.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 예제를 보자. 기욤 드 마쇼의 모테트 Quant en moy vint premierement/Amour et biauté/Amara valde이며 동영상에서 제공되는 악보를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여기서 악보의 맨 아래 성부(테너)를 보면 같은 리듬 패턴이 6마디 단위로 반복되며 가사가 없는데, 이 반복되는 6마디가 바로 아이소리듬이다.[4]

3. 르네상스기의 모테트

모테트는 중세를 넘어 르네상스 시대에도 많이 작곡되었다. 다만 르네상스의 모테트는 중세의 모테트와 몇 가지 측면에서 크게 달라졌는데, 우선 중세기에는 세속 모테트가 주류를 이루었던 반면 르네상스 시기에는 마드리갈을 비롯한 각종 세속음악 장르가 발달하면서 모테트는 대체로 종교음악 영역에 국한되었다.[5]

르네상스 모테트의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다중가사 양식이 사라지고 하나의 가사로 통일되었다는 것이다. 즉 모든 성부가 같은 가사를 노래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각 성부는 좀더 긴밀한 관계를 갖고 한 성부가 다른 성부를 모방하거나 일정한 시차를 두고 따라가는 등의 다양한 작법들이 등장했는데 이런 작법들이 훗날 대위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 한가지 언급할만한 변화는 이소리듬을 바탕으로 한 테너 성부의 정선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더 이상 그레고리안 성가와 같은 전례음악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작곡자의 개성과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작곡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 동영상은 중세 말기 영국의 작곡가 존 던스터블(John Dunstable, 1390-1453)의 모테트인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한 그대(Quam pulchra es et quam decora)'이다. 악보를 보면 테너 성부의 정선율이 사라지고 가사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며 직접 노래를 들어보면 중세의 모테트에 비해 각 성부간의 조화가 한층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모테트 양식은 15세기 플랑드르 악파의 조스캥 데 프레나 16세기 중후반 로마 악파의 팔레스트리나, 오를란도 디 라수스등에 의해 한층 더 발전하게 되는데, 구체적인 사항은 해당 작곡가의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 모테트 양식은 더욱 다양해진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영어 가사로 된 앤섬(Anthem)이라는 영국식 모테트가 등장하였고,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악파에서는 죠반니 가브리엘리를 중심으로 둘 이상의 합창단이나 가수가 주고받는 식으로 노래하는 다창 모테트(polychoral motet) 양식이 정립되어 바로크 초기까지 유행하게 된다. 또 만토바 대성당의 악장 로도비코 비아다나(Lodovico Grossi da Viadana, 1564∼1627)는 오르간이나 현악 통주저음과 독창을 위한 모테트 양식을 확립하였다. 한편 독일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예배를 위한 음악이었던 코랄(choral)에서 기원한 다성 모테트가 유행하였다.


위 동영상은 죠반니 가브리엘리의 모테트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 부르지 않는다 (요한복음15:15)(Jam non dicam vos servos)'이다. 전술했듯이 두 합창단이 같은 가사를 바탕으로 서로 보조하거나 응답하는 형식으로 곡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6]

4. 바로크 시기 이후의 모테트

바로크시대에 접어들면서 모테트는 점차로 쇠퇴하게 된다. 바로크 시기 프랑스에서는 모테트로 통주저음 반주와 소규모 합창단을 위한 소 모테트(petit motet)와 대규모 합창단과 관현악 반주를 위한 대 모테트(grand motet)로 구별되었는데, 후자의 경우 주로 큰 종교행사나 왕실행사용으로 작곡되었다. 하지만 이런 분류는 프랑스의 모테트에 한정된 것이고 다른 지역의 모테트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18세기 이후 모테트는 양식상의 정체성이 사실상 사라지고 미사와 같은 전례음악이나 오라토리오, 스타바트 마테르, 칸타타와 같이 양식이 확립된 종교음악을 제외한 기타 종교음악을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다. 쉽게 말해 작곡가가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종교음악을 작곡한 후에 그걸 모테트라고 부르면 그대로 모테트가 되었다. 양식도 다양해져서 독창/중창/합창 등 다양한 형태로 연주되었다.

18세기 이후 유명한 모테트 작품으로는 비발디의 Nulla In mundo pax sincera(세상에 참 평화는 없도다, RV 630), 바흐가 라이프치히 시절 작곡한 6곡의 모테트(BWV 226~231)와 모차르트가 18살에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정확하게는 카스트라토) 독창을 위해 작곡한 모테트 Exultate Jubilate(기뻐하라 찬미하라, K. 165), 그리고 생애 말년에 작곡한 Ave verum Corpus(성체 안에 계신 분, K. 618) 등이 있다. 특히 비발디는 모테트 분야에서 다수의 작품을 남겼으며 Nulla In Mundo Pax외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다.
Mozart, Exultate Jubilate, K. 165(Lucia Popp)
Vivaldi, Nulla in mundo pax sincera, RV630

이 모테트는 낭만주의 시대 이후 창작 빈도가 크게 줄었으며 20세기 이후에는 사실상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상태이다. 그나마 유명한 작곡가 가운데 프란츠 리스트가 말년에 작곡한 모테트가 있는데 자주 연주되지는 않는다.



[1] 그래서 중세시대에는 이런 음악을 연주할 때 정선율이나 일부 성부를 기악으로 연주했다고 한다. 심지어 연주기법이 크게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런 작품을 그냥 성악으로 연주하면 산만하고 무질서하게 느껴진다.[2] 기악으로 연주되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실제로 현재에도 기악으로 연주하기도한다.[3] 이 테너 성부의 역할은 오늘날 록 음악이나 헤비메탈 음악의 리프(riff)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4] 곡의 분위기에 따라 2분 50초 경에 리듬 패턴이 바뀐다.[5] 본질적으로는 르네상스의 모테트는 종교 마드리갈이라고 볼 수있다. 모테트와 마드리갈은 기원은 다르지만 종국에는 비슷한 양식으로 수렴하였기 때문이다.[6] 이런 응답 형식의 노래는 중세의 안티폰(antiphony) 양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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