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6-11 20:06:44

마이클 잭슨/공연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B8%B6%C0%CC%C5%AC_%C0%E8%BD%BC_%BF%F9%B5%E5%C5%F5%BE%EE.jpg
마이클 잭슨이 월드투어를 진행한 곳을 표시한 지도.[1]
파일:external/3.bp.blogspot.com/tour_dangerous_toaster.jpg

마이클 잭슨 'Dangerous' 투어의 시작을 알리는 부분. 일명 토스터 기법으로 많은 가수들이 공연에서 채용하고 있다.

잭슨은 자신의 생애에서 총 15번의 투어[2]에 900회에 가까운 공연을 했지만 정작 남아있는 동영상은 거의 없다.
투어는 아니지만 탤런트 쇼나 스크립트 공연에서 노래를 부른 것만 합치면 횟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1984년 잭슨스 (잭슨 파이브는 잭슨스로 이름을 바꿈.)의 일원으로 빅토리 투어를 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엄청나게 몰렸다고 한다. 당시가 스릴러 열풍으로 팝 역사상 최강의 괴물인 잭슨이 미국 전역을 돌며 투어를 한다는 데 사람들이 안 보고 못 빼길 수가 있나. 별로 공연하지도 않았는데 80년대 가장 좋은 수익을 거둔 투어 7위를 기록한다.

1987부터 1989년까지 1년4개월간 그의 첫 솔로 투어인 Bad 투어가 열렸다. 123회 공연으로 440만명의 관중들을 불러왔고 영국 웸블리에서 7회 연속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50만 4천명과의 관중들과 만났다. 배드 투어는 일본을 시작으로 열렸는데 일본에서 당시 잭슨의 공연 표가 매진되는 건 당연하고 암표가 횡행하여 암표상들이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한다. 배드 투어의 라이브 영상으로는 2012년 발매된 영국 웸블리 공연 DVD가 있다. 1억 2천 5백만 달러[3]를 벌어들여 80년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투어 2위 솔로 가수로는 1위를 기록했다. 또, 당시 관객들이 잭슨의 공연을 보고 기절하고 부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사태는 데인저러스 투어도 마찬가지. 잭슨의 말에 의하면 공연을 열 때마다 3천 명씩 실신해서 실려 갔다고 한다.

1992-1993년에는 Dangerous 투어가 열렸다 마이클 잭슨의 진통제 중독으로 후반부 스케줄이 취소되어 총 69회의 공연으로 350만 명의 관중들과 만났다. 이전 투어와는 달리 퍼포먼스가 더 과감해졌다.[4] 데인저러스 투어의 라이브 영상으로는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공연이 2005년 DVD로 발매됐다.

1996년 7월 16일 히스토리 투어 시작전에 브루나이에서 브루나이 국왕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Royal Brunei 공연을 개최하여 6만명의 관중을 무료로 받았다. 내용적으로 보면 시작은 데인저러스 투어로 하는데 끝은 히스토리 투어로 끝나는 공연.

1996-1997년에는 HIStory 투어가 열린다. 35개국 82회 공연 450만명의 관중들과 만났다. 이때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했다. 마이클 잭슨은 1993년 Dangerous 투어 당시에도 우리나라에 오려고 한 적이 있는데 김영삼 정부는 근검절약 분위기에 맞지 않다고 거절한 바 있었고 [5] 이번에도 좌절되는 가 싶더니 겨우 겨우 공연이 성사됐다. 하지만 반미를 외치는 세력들과 개신교 목사들이 주축이 되어 마이클 잭슨 공연 반대 대책위가 꾸려지고 잭슨 내한 공연 반대 운동이 매우 격렬하게 펼쳐졌다. 심지어는 공연 반대 대책 위원회에서 마이클 잭슨측과 계약을 하고 표를 판매하기로 한 태원예능에게 서점들과 은행 등에서 표를 판매할 경우 해당 서점과 은행의 불매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협박했고 태원예능은 협박에 굴복, 표 판매를 철회하고 전 직원들이 동원되어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수작업으로 표를 판매했다고 한다. 더욱이 공연 퍼포먼스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심의위원회에서 19금 이상의 성인용으로 처리되었고 덕분에 표 판매는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기사를 보면 매진에는 실패했고 관객의 70% 가까이를 채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2회 동안의 총 관중 수는 9만명. 총 2회 공연 중 두 번째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다. 근데 7만 8천명도 당시 잠실 주경기장의 다른 행사의 입장 인원을 생각해 보면 꽤 많이 들어온 거다. 공연이 끝나고 태원예능의 사장님인 정광택씨가 당시 겪은 일을 바탕으로 '마이클 잭슨이 어쨌다구요?' 라는 책을 쓴 바 있다. 현재는 절판되어 사지는 못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다. 정광택씨는 책 뒷면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정부가 허가한 공연의 표도 못 팔게 한 나라가 이 지구상 어디에 있습니까?"

1999년에는 'Michael Jackson & Friends'라는 자선공연이 우리나라 서울독일 뮌헨에서 열렸다. SBS에서 서울 공연을 생중계 해줬는데 시청률이 최고 42.3%였다.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과 독일은 분단 경험이 있는 국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2001년에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마이클 잭슨 30주년 기념공연을 했다. 이때 You Rock My World를 공연할 때 어셔와 크리스 터커가 난입하여 함께 공연했다. 또한 휘트니 휴스턴 역시 참가하여 공연했다.

말년에 있던 솔로 투어에서 립싱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는데, 배드 투어 때는 체 세트리스트 중에서 3곡을 립싱크 하는 것을 제외하면 전곡을 라이브로 소화했지만[6] 데인저러스 투어부터는 과감한 퍼포먼스가 추가돼 라이브 비중이 60% 정도로 줄었다. 문제는 히스토리 투어인데 당시 1-2곡을 제외한 모든 노래를 립싱크 처리했다. 마이클 잭슨의 댄스는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로 하여 체력 소모가 심하다. 거기다 마이클은 통증까지 앓고 있어 데인저러스 투어부터는 진통제를 맞아가며 버텨왔지만 1993년 재판 이후 급속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 거기다 목 상태도 나빠져 히스토리 투어부터는 립싱크 없이는 공연을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는 가장 최근 시기에 있던 히스토리 투어의 동영상만 많이 풀렸지. 그 이전인 데인저러스나 배드 투어는 거의 없어 일부 유출된 소수의 영상과 잭슨 5 시절 공연 영상 밖에 없어 배드 투어를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하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마이클 의 사망 3년 이후인 2012년 웸블리 투어 영상이 공개되면서 팬들의 숙원이 어느 정도 풀렸으나 아직도 풀어야 할 라이브 동영상은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일부 극성팬들은 해킹을 해가며 투어 동영상을 야금야금 빼오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야 몇 개의 불법적인 공연 동영상이 유출돼 볼 거리가 더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음질 리마스터나 화질의 개선없이 단지 빼오기만 했을 뿐이라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이클은 월드 투어에 대해 "별로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투어는 나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간다. 한번 공연을 하고 나면 몸무게가 500g이 빠져 나간다" "실컷 공연해 봤자 동영상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를 넘나들며 시차 적응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거기에다 2시간 동안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테크닉의 마이클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었을 거다.

마이클 잭슨이 성인이 되어 참가한 Victory World Tour, Bad World Tour, Dangerous World Tour, HIStory World Tour의 총 관중수를 합치면 1440만명에 달한다. 거기에다가 로얄 브루나이 공연[7]의 6만명을 더하면 1446만명이 된다. 말이 1446만명이지 이는 엄청나게 많은 수인데 피파 월드컵 중 최다 관중인 3,587,538명을 동원한 1994년 미국 월드컵의 관중수에 4배를 곱해도 마이클 잭슨의 월드투어 관객수보다 작다. 즉 평균관중이 68991명이었던 미국 월드컵 경기를 108번해도 1446만명이 안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 어떤 팝 아티스트의 관중동원 기록보다도 압도적인 수치다.[8] 또한 마이클은 투어 때 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돈을 끌어모았는데[9][10] 아무런 계산없이 합쳐도 3번의 투어 평균수익이 1억 3천만 달러이고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고려하여 계산하면 3번의 투어동안 평균수익이 2억 1천 5백만 달러에 달한다. 투어횟수 자체가 적다는것과 21세기들어서 투어를 한적이 없다는 점 때문인지 총관중 총합과 수익총합 순위에서 밀려났다.[11] 또 가장많은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미국본토[12]를 데인저러스 투어때부터 제외하기 시작했는데 투어의 흥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13]

[1] 빠진지역이 있다면 추가 바람[2] 그런데 솔로투어를 보통 10회 전후, 많으면 20회 가까이 가는 다른 아티스들과는 다르게 3번밖에 안했다.[3] 현재기준으로 1달러를 1100원으로 환산할시 1375억.[4] 비록 그 때문에 마이클의 진통제 중독으로 후반기에 공연이 중단되었지만.[5] 이 당시 마이클 잭슨이 개런티로 제주도를 달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지도를 본 후 작은 섬 하나를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확인된 바는 없다.[6] 1차투어에서는 100% 라이브 공연을 하였다.[7] 1996년 브루나이 국왕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공연. 6만명의 관중을 무료로 받았다.[8] 락그룹들에게는 밀린다.[9] Bad World Tour, Dangerous World Tour, HIStory World Tour의 합산 수익금 총합은 3억9천만달러로 1달러를 1100원으로 칠경우 4290억원이다. 그런데 저 수익금들을 2015년 기준으로 환산하여 계산할 경우 6억4천6백만달러로 7106억원이 된다.[10] 위키피디아의 투어항목을 참조.[11] 그런데 투어를 4번 밖에 안했음에도 10회전후를 진행한 다른 아티스트들과 비슷하다.[12] 보통 다른 아티스트들이 투어를 진행할때는 미국에서만 공연의 40%를 진행한다.[13] 이는 마이클 잭슨의 관중동원능력이 매우 강력하고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졌기 때문에 유럽이나 아시아, 남미를 대상으로 투어를 해도 항상 전석매진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클이 매진을 기록하지 못한 대표적인 공연은 1997년 서울에서 열린 히스토리투어인데 이때 18만명중에 9만명만 입장했는데도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관중동원기록 1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