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3 05:11:16

마이바라 맨홀 오수탱크 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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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경위
2.1. 사건의 행적2.2. 불륜 상대의 잔인함2.3. 증거2.4. 부인하는 범인
3. 최종 판결4. 관련 문서

1. 개요

마이바라 오수탱크 살인사건(米原汚水タンク殺人事件).

2009년 일본 시가현 마이바라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2. 사건 경위

2009년 6월 12일 오전 6시경 시가현의 마이바라시(米原市) 이부키(伊吹) 지역의 오수탱크 안에서 여성의 시신이 떠있는 것을 작업하던 인부가 발견하고 신고하였다. 피해자는 대기업인 일본 전기 유리(日本電気硝子,NEG)의 회사원 오가와 노리코(小川典子,당시 28세)로 밝혀졌으며, 시신의 상태는 얼굴에 둔기에 맞은 흔적이 보이는 다수의 멍과 함께 후두부의 함몰 골절이 발견되었다. 사건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6월 19일 마이바라 경찰은 사건의 용의자로 피해자의 상사이자 불륜 상대였던 모리타 시게나리(森田繁成, 체포 당시 40세)를 체포하였다.

2.1. 사건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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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인 오가와 노리코.

피해자인 오가와 노리코는 6월 10일 아침 항상 몰던 자가용으로 출근을 나섰으나 가는 도중 차가 고장나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를 대신하여 출근하였고 용의자인 모리타는 오가와를 대신하여 자동차 판매점에 고장난 차의 판매를 의뢰했다.
그 후 저녁이 된 오후 8시경 회사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오가와는 실종.

그 후 모리타는 자동차 판매업자에게 “피해자와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 통화했고 다음날 아침 또 다른 상사가 오가와의 핸드폰으로 3번 가량 연락을 했으나 받지않자 11일 오전중에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 신고서를 제출했다.

12일 오전 6시경 피해자는 오수탱크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오수탱크의 주변에서 그녀의 휴대전화, 화장품, 그리고 둔기로 쓰인 망치도 함께 발견되었다. 시가현 경찰 형사과 조사본부와 마이바라 경찰서는 조사본부를 설치하여 교우관계와 휴대전화 내역 등 사건을 조사한 결과, 피해자와 마지막으로 연락하고 평소 불륜 사이로 지내던 모리타 시게나리를 긴급 체포하였다.

2.2. 불륜 상대의 잔인함

파일:IMG_maibara2.jpg
용의자인 모리타 시게나리.

모리타 시게나리는 부인과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었으나 파견 사원으로 들어온 피해자 오가와 노리코와 불륜 관계를 맺고있었다. 그는 피해자와 교제로 인한 트러블로 자주 다퉜고 오가와는 주변 지인에게 “일상적으로 폭력을 당하고 있다. 무섭다”라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오가와의 부모는 12일 실종 신고서를 내기 전 딸을 찾아 그녀의 자취방을 방문했을 때 책상 위에 모리타의 휴대전화 계약서가 올려져있는 것을 보고 모리타의 자택 주소로 찾아갔으나 부재중이었고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오가와를 잘 모른다“고 하며 쌩판 모르는 척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결혼해서 가정이 있기때문에 전화하거나 찾아오면 민폐다“라고 차가운 태도를 보였으며 주변에게도 ”내가 오가와와 사귄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쓰레기

10일 오후에서 11일 오전 사이에 차 안에서 모리타는 오가와와 다투다가 망치로 그녀의 머리를 가격한 뒤 완전히 죽음에 이르지않고 의식이 있던 오가와를 질질 끌고가 근처 맨홀 뚜껑을 열고 오물이 가득 흐르던 그 안에 억지로 빠뜨렸다. 그리고 다시 뚜껑을 닫은 후 그녀가 혹시라도 살아돌아오지 못하도록 간판을 얹어놓았다. 그리하여 오가와의 사인은 오물 흡입에 의한 질식사가 되었다.

2.3.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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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오수탱크의 맨홀.

사건의 정황상 범인은 모리타 시게나리임이 분명하였으나 그는 경찰에서도 자신의 범죄를 부인했고 결정적으로 증거가 뚜렷하지않았다.

그러나 그가 사건이 있던 당일 출근 후에 오후에 반차를 쓴 것이 확인되어 알리바이가 없었고 13일 자신의 자동차를 나가하마의 자동차 수리점에 맡긴 행적을 찾아냈다.
자동차는 앞 유리와 백미러가 파손되있었으며 안에서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히는 증거들이 다수 존재했다.

또한 결정적으로 차량에서 나온 소량의 혈흔이 DNA 조사 결과 오가와 노리코의 DNA와 일치하는 것이 20일 판명되어 그를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검거할 수 있었다.[1]

2.4. 부인하는 범인

2009년 7월 9일 오오츠(大津) 지검은 모리타 시게나리를 살인죄기소하였다. 그러나 “전혀 기억도 없고 사건이랑 관계도 없다“고 부인하며 단 한번도 죄를 인정하지않고 있다.

더불어 모리타의 부인은 더 놀라운 행적을 보여주었는데, 법정에서 “남편은 이렇게 무서운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남편을 열심히 감쌌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착한 남편“, “집에서 있을 곳이 없었던 (불륜을 저지른)남편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내가 잘못“이라며 법정에서도 쉬는 시간에는 시종일관 남편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3. 최종 판결

2010년 11월 4일 오오츠 지검에서 첫 공판이 열렸으며 용의자인 모리타는 “공고사실과는 관련이 없으며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검찰 측은 두 사람의 교제 트러블, 차량 내 혈흔과 상태에 대한 목격 증언 등을 거론하며 “범인이기에 할 수 있는 거짓말을 조사 단계에서 했다“고 지적하였다.

당일 공판에서는 피해자의 시체 부검을 맡은 의사가 등장하여 시신의 상태에 대해 “머리 부분에 20회 이상, 구타를 막으려고 한 손을 포함하면 30회 이상의 상흔이 있었다“고 증언했고 며칠 뒤에 열린 피해자 지인들의 증언에서는 모리타가 ”오가와를 차량 시트에 눕히고 목을 조르거나 때리기도 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를 모리타는 “히스테릭을 부릴 때 잠재우기 위해서 위에서 누른 적은 있다“, ”(오가와가)몇시간이나 하루 이틀이면 기분이 나아졌었다“고 부정했다.

2010년 12월 2일 오오츠 지검은 “불합리한 변명을 계속하며 반성이 없음에 책임이 무겁다”, “단 계획성은 보이지않으며 무기징역에 준하지는 않다“며 징역 17년형을 구형하였다.

4. 관련 문서


[1] 모리타는 이 혈흔을 피해자가 코피를 흘렸을 때 생긴 혈흔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