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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누스 덴 오우덴

<colbgcolor=#006666><colcolor=#fff> 마리누스 덴 페트뤼스 안토니위스 덴 오우덴
Marinus Petrus Antonius den Ouden
파일:1000126502.jpg
출생 1909년 8월 21일
네덜란드 노르트브라반트주 아우트엔니우하스털
사망 1951년 2월 12일 (향년 42세)
대한민국 강원도 횡성군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학력 왕립사관학교
직업 군인
복무 기간 1932~1951
계급 중령
참전 태평양 전쟁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6.25 전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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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군인.

2. 생애

노르트브라반트 주의 브레다에 있는 네덜란드 육군사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1932년에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네덜란드령 동인도군에 복무하였다.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군과 교전을 치렀으나 패배후 포로로 잡혀 3년 반동안 억류되었다. 2차 대전 종전 후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으로 인해 인도네시아 독립군과 전투를 치르다가 본국으로 귀환했다.

1950년 6월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조직된 유엔군에 자원했다. 1950년 10월 21일 소령 계급으로 유엔군 소속 네덜란드 대대의 지휘관 자격으로 10월 26일 한국으로 출항, 11월 23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부산에 도착한 지 1주일 만에 북진 병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전투를 치렀다.

12월 중순 미군 제2보병사단 38연대에 배속되어 전선 후방으로 공격하는 북한군과 중공군을 막아내는 업무를 수행했다.

1951년 2월 12일 북한군과 중공군을 후퇴시키기 위한 '라운드업 작전'에도 참여했다. 1951년 2월 11일 북한군과 중공군은 반격을 개시했고, 홍천∼횡성 간 도로에서 벌어진 횡성 전투에서 오히려 북한군과 중공군의 합동 공격을 당해 병력이 고립되었고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오우덴 중령은 부대원들과 무너지고 있는 횡성교를 건너 철수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본 한국군을 엄호하다 전사하였다. 이 전투에서 오우덴 중령을 포함한 15명이 전사했다.

사후 시신은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었다. 횡성군엔 그를 기념하고 있는 비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