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6600><colcolor=#fff> 네덜란드령 동인도군 Koninklijk Nederlands Indisch Leger | ||||||
창설일 | 1814년 9월 14일 | |||||
해체일 | 1950년 7월 26일 | |||||
국가 | 네덜란드령 동인도 | |||||
규모 | 65,000명 | |||||
사령관 | ||||||
참전 | 자바 전쟁 파드리 전쟁 발리 원정 보르네오 서부 원정 팔렘방 고지 원정 반자르마신 전쟁 제2차 본 전쟁 케린치 원정 아체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 |||||
위치 | 네덜란드령 동인도 반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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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군대이다.2. 역사
1814년 설립된 왕립 네덜란드 동인도군 (KNIL)은 네덜란드 왕립군의 일부가 아니라 식민지 총독이 지휘하고 식민예산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별도의 군대였다. 대부분의 장교는 유럽인이었지만 군인의 대다수는 인도네시아 토착민이었고 그 중 가장 많았던 것은 자바인과 순다인이었다. 육군으로만 구성됐으며, 해군은 본토 해군 전력이 순환 배치됐다.제2차 세계 대전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을 거치며 당시 65,000명이었던 동인도군은 해산되었고 그 중 26,000명은 새로운 인도네시아군에 편입되었다.
동인도 지배 체제가 안정화된 20세기 윤리정책 시대에 동인도군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평시 동인도군은 3만 명 정도로 구성되었고, 1941년 12월 동인도군의 규모도 고작 34,000명의 병(토착민 28,000명)과 1,000명의 장교로 구성되어 있어 침공해온 일본군의 2개 사단 규모에 불과했다. 20만 대군을 평시 운용하고 전시 250만까지 동원했던 인도 제국군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고 1939년까지 8만 명 수준의 군대를 유지했던 호주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였다.
동인도군 사관학교는 수도 바타비아(오늘날의 '자티느가라(Jatinegara)' 지역)에 있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사관학교에 입학할 필요가 있었다. 20세기 윤리정책 시대에는 토착민의 입학이 제한되지는 않았지만, 사관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학력이 높은 토착민은 동인도군 장교의 수가 제한되어 있어 장교로 출세하기 어려웠으므로 보통 관료학교 입학, 대학 진학 등 다른 길을 택했다. 그래도 일부 토착민은 사관학교에 입학해 졸업했으며, KNIL 장교로 임관해 유럽계와 나란히 복무했다.
우립 수모하르조(Raden Oerip Soemohardjo, 1893~1948) 같은 경우는 1914년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가 되었고 1935년 소령까지 올랐는데, 토착민 장교가 실력으로 영관급까지 오른 것은 이때가 최초였다. 그 밖에 친네덜란드파 부역자로 유명한 폰티아낙 술탄국의 술탄 하밋 2세(Sultan Hamid II, 1913~1978)는 네덜란드 본토 브레다에 있는 왕립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중위로 임관해 복무하다 술탄위를 계승하였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는 1946년 동인도군 소장이 되었지만 이것은 실력으로 오른 자리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중부자바의 네덜란드 산하 번국이었던 망쿠느가란 공국에는 전통적으로 공작이 지휘하는 망쿠느가란 부대(Legiun Mangkunegaran)라는 소규모 부대가 있어 동인도군의 지휘를 받았다. 19세기의 망쿠느가라 2세(Mangkunegara II, 재위 1796~1835) 이래 망쿠느가란 공작들은 망쿠느가란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동인도군 대령 계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