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리재일 李載佾 | Ri Jae Il | |
출생 | 1934년 9월 4일 |
일제강점기 평양 | |
사망 | 2021년 2월 4일 (향년 86세) |
평양시 | |
국적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정치가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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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인.2. 생애
1934년 9월 4일, 평양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소작농을 하였다. 해방 이후 강동군당위원회 지도원, 부장을 거쳐 평양신문사 부주필로 일하였으며 1970년대 선전선동부 과장, 부부장을 역임하는 등 김정일의 초기 선전선동부 측근 중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북한에서 공개한 기록영화에서 김일성, 김정일 시대부터 수령을 수행하면서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봐서는 이미 과거부터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1963년에 당중앙위원회에 입사한 이후부터 그를 따라다닌 것을 봐서 초기 측근 중 한명이었다. 선전선동부 부부장 임명 이후 소위 형식주의와 도식주의에 빠진 당 사상사업을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카더라. 2001년 2월, 출판지도국 국장을 지냈으며 2004년 5월에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에 올랐다. 2005년 10월, 연형묵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09년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김정은이 후계수업을 받을 때도 그를 언제나 따라녔는데 이를 보면 김정은 승계를 지지한 김정일 측근진, 혹은 김정은에게 후계수업을 담당한 실무자 중 한명으로 보인다. 2012년 4월, 4차 당대표자회나 2013년 3월 전원회의 시점에서 이미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3년 12월, 김국태 장의위원, 2014년 7월, 전병호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4년,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2016년 5월, 강석주 장의위원을 지냈다. 김정일 시대를 이어 김정은 시대에도 김정은을 보좌하는 최측근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북한의 괴벨스라는 별명도 있었다. 2017년 6월 2일, 영국 정부의 단독 대북제재 리스트에 올랐으나 영국은 리재일이 죽은 게 업데이트가 안됐는지 죽은 리재일을 계속 제재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류현우의 증언에 따르면 한번 은퇴했다가 다시 복귀했다는데 이 시점이 아닐까 추정된다. 은퇴 기간에 혹독히 고생했는지 같은 선전선동부에서 근무했던 김여정을 찾아가서 배급 문제를 풀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으며 은퇴에서 복귀한 후에는 전일춘을 찾아가서 제발 손자에게 먹고 살 걱정 없는 일자리 하나만 달라고 부탁하면서 전일춘에게도 은퇴 전에 노후 문제는 해결해놓으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2018년 10월, 김정은의 당창건 73주년 금수산궁전 참배 때 동행하였다. 하지만 고령의 나이가 문제가 되었는지 2019년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는 탈락하였으며 선전선동부 고문으로 물러났다.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도 중앙위원회에서 탈락하였는데 아마 그 이전에 이미 소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의 특별지시로 2021년 1월, 8차 당대회 특별손님으로 초대되는 것이 고려되었으나, 이미 건강이 너무 안좋아져서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북한 선전에 따르면 병상에 누워서도 김정은의 총비서 추대에 기뻐서 난리를 쳤다고 하는데 현철해 선전과 비슷한 내용이다.
그러다가 2021년 2월 4일에 86세를 일기로 폐암으로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는 부고를 발표, "동지는 주체혁명위업수행의 중대한 력사적시기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 사업하면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도체계를 철저히 확립하고 전당과 전체 인민을 당정책관철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투쟁에 온갖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치였다. 리재일동지는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튼튼히 무장하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위업에 무한히 충실하였다. 동지는 투철한 혁명적원칙성과 고지식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하여 우리 당원들과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수령에 대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심과 높은 책임성을 지니고 신념과 량심으로 우리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리재일동지를 잃은것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큰 손실로 된다."라고 아주 크게 그를 칭찬하였고 김정은이 화환도 보내주었다. 2월 7일에 장의식이 진행, 바로 애국렬사릉에 당중앙위원회 고문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사후 북한 기록영화 빛나는 삶의 품 31편: 충성의 한길에서 영생하는 삶에서 그의 생애를 기렸다.
3. 여담
- 2019년 탈북한 전 쿠웨이트 북한 대사대리 류현우에 따르면, 리재일은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에서 물러난 뒤 중앙당 배급이 끊기고 쌀이 떨어지자 함께 근무했던 김여정을 찾아가 식량 공급을 요청했다고 한다.#
4. 참고문헌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21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