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언론인.김정일의 서기실장을 지냈다.
2. 생애
1933년 7월 25일,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원산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6.25 전쟁에 참전해서 낙동강 전선까지 왔다 갔다. 종전 이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고 전해지며, 출판보도 부문, 즉 언론 분야에 종사하였다. 1967년 3월, 판문점에 로동신문 출입기자로 나타났다. 김정일이 선전선동부문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던 과정에서 그의 측근이 되었으며 사적으로도 절친한 친구가 되어 그를 모셨다.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에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갖은 독설을 로동신문 지면을 통해 퍼부었다. 1972년,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당시 취재를 위해 서울을 방문하였다. 회담 중 9월 15일자 로동신문에 남한은 자유와 민주주의 무덤이라는 비난하는 기사가 실렸다고 남한 기자들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에 대해서 자신은 그런 기사를 보낸 적이 없으며 신문을 읽고 확인해보겠다고 답변하였다. 문제의 기사는 "비참한 현상들이 <복지사회>라고 하는 남조선에서 오늘 쉬임없이 빚어지고 있으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차려지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떤것인가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시 한번 똑똑히 보게된다."라고 비난한 <남조선사회가 빚어낸 참극: 전라남도 승주에서 막대한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게 된 한 가족이 집단자살>이라는 9월 15일자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추정된다. 9월 16일 아침, 평양으로 떠나기 직전에 숙소였던 타워호텔 앞에서 동아일보를 가졌으며, 남한 언론이 북한을 중상모략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의도를 이해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평양에 오라고 덕담을 했다. 북한으로 돌아간 이후 1973년부터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였다고 한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1982년 4월 5일,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선전선동부 부부장, 강원도당 선전비서 등으로 사업하다가 1986년 2월, 6기 11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 선전선동부장으로 조동된 김기남의 뒤를 이어 로동신문 책임주필에 임명되었다. 김일성은 1985년 소련 대사 슈브니코프와의 대화에서 리성복을 칭찬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장을 겸하게 되었으나 1987년 4월, 주창준에게 로동신문 책임주필 및 기자동맹 중앙위원장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뭔가 사고를 쳐서 쫓겨난 것인지 중앙위원회에서조차 방출되었다. 조선기록영화 21편에 따르면 사고를 쳐서 지방으로 쫓겨났으나 이후 용서를 받고 다시 중앙으로 복귀했다.
1992년, 김정일의 서기실장으로 오래 일해왔던 리명제가 서기실장에서 물러나자 후임 서기실장에 임명되어 죽을 때까지 김정일을 모셨다. 서기실장으로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겸직하였다. 1992년 12월 10일, 6기 20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5년, 조선로동당 창건 50주년 김일성훈장을 받음으로 이중수훈자가 되었다.
북한에서 발표한 부고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선전선동 부문에서 열심히 활약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1년 5월 15일 15시 30분, 67세를 일기로 간암으로 인해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는 부고를 발표, "리성복동지는 당과 수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 투쟁하여 온 충직한 혁명전사이다. (...) 리성복동지는 다년간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당의 령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인민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던 어려운 시기에 당의 선군령도혁명을 높이 받들고 우리 혁명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해 적극 투쟁하였다. 리성복동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령도에 끝없이 충실하였으며 높은 실력으로 우리 당을 받들었다."라고 아주 좋게 말해주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당중앙위원회 서기실 실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
- 현성일,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 간부정책을 중심으로(서울: 선인, 2007).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