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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0000><colcolor=#fff> 뢰로스 Røros[1] Plaassja[2] | |
<nopad> | |
행정 | |
국가 |
|
주 | 트뢰넬라그 주 |
시간대 | UTC+1/+2 |
인문·자연 환경 | |
인구 | 5,667명(2025) |
인구밀도 | 1,181명/km² |
면적 | 3.31km² |
해발고도 | 630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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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한국어 | 뢰로스 광산 도시와 주변 경관[3] | |
노르웨이어 | Røros bergstad og Circumferensen | ||
영어 | Røros Mining Town and the Circumference | ||
프랑스어 | Ville minière de Røros et la Circonférence | ||
국가·위치 |
트뢰넬라그 주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55 | ||
등재연도 | 1980년 | ||
등재기준 | (ⅲ)[4], (iv)[5], (v)[6] | }}} |
1. 개요
뢰로스는 노르웨이 트뢰넬라그 주에 위치한 뢰로스 지자체(kommune)의 행정 중심지인 소도시이다. 뢰로스는 1646년 광산 도시(Bergstad)로 설립되어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에,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7] 도시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동 정도의 크기에 1만 명도 안 되는 인구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실상 마을에 가깝다.2. 역사
뢰로스 일대에서는 1644년 처음 구리가 발견되었다. 1646년에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으로부터 광산 도시로 지정되며 본격적으로 뢰로스의 광산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후 뢰로스는 1977년까지 333년 동안 노르웨이 구리 채굴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뢰로스는 덴마크-노르웨이 왕국과 스웨덴 왕국 사이 벌어졌던 스코네 전쟁[8] 중이던 1678~1679년 스웨덴군에 의해 불타 버렸고, 이후 완전히 재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1] 노르웨이어 명칭[2] 남부 사미어 명칭[3] 원래는 영어 유산 명칭인 'Røros Mining Town'을 따라 '뢰로스 광산 도시'로 공식 번역되었으나, 이후 2010년 유산 구역이 확대되면서 'Røros Mining Town and the Circumference'로 영어 명칭도 변경되었으나 한국어 공식 번역은 그대로 '뢰로스 광산 도시'에서 바뀌지 않았다.[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6]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7] 2010년에는 유산 구역이 확대되면서 주변 지역과 동계 운송로 등도 포함되었다.[8] 스웨덴-브란덴부르크 전쟁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