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론 데니스 Ron Denn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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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47년 6월 1일 |
| 서리주 워킹 | |
| 국적 | |
| 직업 | 기업인 |
| 소속 | 맥라렌 |
1. 개요
영국의 기업인. 맥라렌을 이끌며 팀을 F1의 명문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유명하다. 1980년대부터 맥라렌 F1 팀의 단장(Team Principal)을 맡았으며, 맥라렌 그룹 전체의 회장 및 CEO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엄격하고 완벽주의적인 경영 철학은 맥라렌을 단순한 레이싱 팀을 넘어 하이테크놀로지 기업으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 경력
18세에 쿠퍼 자동차(Cooper Car Company)에서 미케닉 견습생으로 모터스포츠 경력을 시작한다. 이후 브라밤 팀을 거치며 미케닉으로서 실력을 쌓았고, 잭 브라밤이 은퇴한 후인 1971년 동료와 함께 자신의 팀인 론델 레이싱을 설립하여 F2 등 하위 카테고리에서 성공을 거둔다. 론델 레이싱을 정리한 후에도 '프로젝트 3', '프로젝트 4' 등의 팀을 운영하며 특히 포뮬러 2와 포뮬러 3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다.1980년, 그는 당시 침체기에 있던 맥라렌 F1 팀에 합류해 팀 운영권을 확보하고, 브루스 맥라렌의 레이싱 팀과 자신의 프로젝트 4 팀을 합병하여 1981년에 맥라렌 인터내셔널을 창립하고 단장 자리에 오른다. 이 결정은 맥라렌 부흥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다.
2.1. 맥라렌의 전성기
막대한 투자를 유치하고 조직을 완전히 혁신하며 맥라렌을 F1 최강팀으로 탈바꿈시킨다. 특히 1980년대에는 세르지오 고든의 재능을 알아보고 엔지니어로 영입하고, 포르쉐와 협력하여 TAG 포르쉐 엔진을 사용하는 등 과감한 시도를 감행한다.1984년에는 니키 라우다와 알랭 프로스트 듀오로 맥라렌이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부활을 알린다. 이후 1988년에는 F1 역사상 최고의 드라이버로 불리는 아일톤 세나를 영입하며 프로스트와 함께 팀을 이끌도록 한다. 이 두 전설적인 드라이버는 '맥라렌-혼다 시대'를 열며 1988년 시즌 16번의 레이스 중 15번을 우승하는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 세나와 프로스트의 치열한 라이벌 구도 속에서도 데니스는 팀의 중심을 잡고 운영을 이어갔다.
1990년대를 거치며 다소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미카 해키넨을 앞세워 다시금 챔피언 자리에 복귀한다. 2007년에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후원하던 재능인 루이스 해밀턴을 F1에 데뷔시켜 성공적으로 육성한다. 해밀턴은 맥라렌 소속으로 2008년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하며 데니스의 인재 발굴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2.2. 완벽주의와 론스피크
'완벽주의'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의 완벽주의는 팀 운영의 모든 면에 스며들어 있었다. F1 카는 물론이고, 피트 시설, 심지어는 공장 바닥까지 한 점 티끌도 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청결함을 요구했다. 그의 요구로 지어진 맥라렌의 본사 '맥라렌 테크놀로지 센터(MTC)'는 그의 철학을 건축물로 구현한 상징과 같다. 그의 지휘 아래 맥라렌은 단순히 레이싱 팀을 넘어 항공우주 산업의 기준을 적용하는 하이테크놀로지 기업으로 성장한다.또한, 그는 때때로 모호하고 지나치게 공식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독특한 화법, 이른바 론스피크로도 유명했다. 이는 언론이나 경쟁 팀들에게 맥라렌의 정보를 쉽게 내어주지 않으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