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2 08:51:58

로젠한 실험



1. 개요2. 내용3. 결론4. 영향5. 기타

1. 개요

Rosenhan Experiment 혹은 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

1972년 10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이자 교수인 데이비드 로젠한이 각기 다른 직업의 일반인 7명과 함께 한 사기(hoax) 실험. 후술하겠지만 이 실험은 잘못된 실험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분류할 수 있다는 확신에 대해 새로운 경종을 울린 실험이라고 평가받았었다. 이 실험은 1973년 1월 '정신병원에서 정상으로 살아가기(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라는 논문으로 사이언스지에 발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당시의 정신의학정신병원 시스템을 대폭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부정확한 인용, 거짓 진술, 상황에 맞지 않는 서술 등 논란이 확산되었고, 이후 2019년과 2023년에 발표된 자료로 인하여 이 실험은 조작되었다는 것이 약 50년 만에 밝혀졌다.[1]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정신병원에 입원할 때 연기한 이상행동을 논문으로 발표할 때는 실제보다 축소해서 마치 별 것도 아닌 걸 의사들이 정신질환 진단을 내린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입원시켰다던 7명 중 실체가 밝혀진 건 두 명뿐이고 나머지는 그 정체가 오리무중이며, 근거로 삼은 증언에서는 그 두 명 중 한 명이 또 이야기가 잘렸다는 말이 있다.

정신의학신문의 만화 보기 #1 #2 #3

2. 내용

지식채널ⓔ 131111 제 정신으로 정신병원 들어가기 원본

데이비드 로젠한은 정신병원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는 7명의 일반인을 실험에 참가시켰다. 이들에는 20대의 학교 졸업생, 3명의 심리학자, 화가, 소아과 의사, 주부가 포함되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자신만의 증상을 만들어 진단을 받은 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예를 들면 '어디선가 쿵하는 환청이 계속 들린다' 같은 주장을 일관적으로 하는 것.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지어낸 증상 이외에는 그 어떤 거짓말이나 지어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입원 후에는 입원 전처럼 정상적인 모습으로 생활하였다. 이들은 법적 조언, 환자 도와주기, 글쓰기 등 일상에서 본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후 로젠한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을 모아두고 이 7명의 가짜 환자들이 어떤지 살펴보라고 하였더니, '이 7명의 (가짜) 환자들의 행동 중 일부는 정신병적인 증세가 있다\'고 치부하였다. 재밌는 건 오히려 입원해있던 진짜 환자들이 그 7명이 가짜 환자라는 것을 눈치챘다.

실험이 끝나고, 그들은 일시적 정신 회복이라는 진단을 받아 정신병원을 나오게 되었다. 이후 퇴원한 7명은 다시 모여 자신들이 정신병원에서 경험한 것에 대한 자료를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로젠한은 '정신병원에서 정상으로 살아가기'라는 논문을 써 사이언스지에 게재한다.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편 정신의학계는 가짜 환자를 꾸며 실험을 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다. 또한 한 정신병원은 가짜 환자와 진짜 환자를 구분해보겠다고 로젠한에게 제안했으며, 이를 로젠한이 받아들여 100명의 가짜 환자를 보냈으니 찾아내보라고 한다. 얼마 후, 해당 병원은 100명의 환자 중 91명의 가짜 환자를 밝혀냈다고 말했으나, 로젠한은 사실 아무도 그 정신병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위 일화는 목적을 위해 작정하고 조사할 경우 상당수의 잘못된 판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에 입원한 100명 중 91명이 정상인이라는 것을 밝혀냈으니 그동안은 얼마나 많은 무고한 피해자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확증편향이 너무나 쉽게 진단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3. 결론

로젠한의 실험은 의사들이 정신병원에 들어와 있는 정상인을 제대로 구분해내지 못한 점, 평범한 행동을 정신병적 증세로 오인한 점 등으로 인해 '환자와 비 환자를 일정한 기준으로만 가려내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 러시아에서 일어난 토머 언드라시 사건이 있었다. 물론 두 사건 다 외국인이라서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생긴 문제이긴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내국인 정신질환자로 판단하고 강제로 치료 아닌 치료를 했으니 이 역시 정신의학계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타 문단에 나왔듯이 설령 내국인이어도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생긴 문제를 정신적 문제로 오판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 사건 이전에도 이미 정신병원에 대한 미국 대중의 이미지는 시궁창에 가까웠던 게 여성이 남편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체제와 다른 신념을 지녔다는 이유로, 심지어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돈을 노린 가족이나 친척에 의해 정신이상자로 몰려 감금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결정타가 와인빌 양계장 연쇄 살인사건. 경찰이 실종아동 부모한테 엉뚱한 아이를 보내주고는, 그 어머니가 "이 아이는 내 애가 아니다!"라고 항의하니까 귀찮게 굴지 말라며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킨 전적이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경찰의 명예가 실추될까봐 사회에서 격리시켜 입막음하기 위해 정신병원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받은 병원에서는 그녀가 아무리 스스로를 정상인이라고 주장해도 묵살하고 치료라는 명목 하에 약물까지 주입하려고 들었다. 나중에 살인마가 체포되면서 실종아동은 사실 살해당했음이 밝혀졌고, 피해자 중 한 명의 가족은 이런 일까지 당했음이 알려지면서 담당 형사는 파면되고, 국장은 해임, 시장은 재선 불출마를 해야 하는 등 LA가 문자 그대로 뒤집어졌으며 경찰이 아무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없게 하는 등 여러 규정이 새로 제정되었다.

이러한 악용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신보건법 제24조가 괜히 폐지된 것이 아니다.

4. 영향

로젠한 실험은 실험이 시사하는 결과가 영향력이 높았기 때문에 검증이나 재검토가 이루어지지 않고 넓게 받아들여졌다.

이 연구는 정신의학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정신의학회는 1980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3판(DSM-III)에서 경험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표준화된 진단 기준을 마련했다. 또 미국 내 정신질환자의 탈시설·탈원화 흐름을 가속했고 많은 정신병원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정신의학의 이미지를 악화시켰으며, 몇 십년 동안, 심지어 지금까지도 좋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다. 사기 실험이 정신의학을 수십년 전으로 퇴보시킨 방법(How a fraudulent experiment set psychiatry back decades) 로젠한은 예상치 못했겠지만, 현재 미국 정신병원 병상은 턱없이 부족하고 환자는 지나치게 많아 정신보건 시스템이 무너지다시피 했다. 현재 5판까지 나온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도 그리 엄밀한 것은 아니다. 5판은 진단 기준을 대폭 넓힌 까닭에 과잉 진단과 의약품 과잉 사용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는다. 무엇보다 엄밀함을 추구하다 경직된 현대 정신의학은 환자 개개인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

5. 기타

이 사건을 다룬 책으로는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가 있다. 작가 수재나 캐헐런 자신이 정신질환 오진 피해자였던 것이 책을 쓴 계기라고 한다. 20대 초반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환각, 우울증, 인지력 저하, 편집증 등의 증상을 보이며 일상생활이 무너졌는데 조현병을 진단받고 정신병동에 갈 뻔했지만, 알고 보니 자가면역 뇌염이 원인이었다.
[1]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0957154X2211508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