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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東人之文. 고려 후기의 문신 졸옹(拙翁) 최해(崔瀣, 1287 ~ 1340)가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려 충렬왕(忠烈王)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대 명현들의 시를 모아 1355년(공민왕 4)에 편찬한 국가 시문집. 오칠·천백·사륙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2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동인지문사륙이 대한민국 보물 제710호로, 동인지문오칠이 대한민국 보물 제1089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9권, 동인지문천백(東人之文千百) 1권,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 15권, 총합 25권.한국 역대 명가의 시문선집으로, 예산은자전(猊山隱者傳), 졸고천백(拙藁千百)의 저자로 유명한 최해가 1331년(충혜왕 복위 1)에서 1338년(충숙왕 복위 7) 사이에 저술한 후 그 후손들이 1355년(공민왕 4)에 책으로 편찬한 것이다.
동인지문오칠은 신라 최고운에서 고려 충렬왕 때까지의 한국의 주요 시 작품을 모은 것이고, 동인지문천백은 산문 작품을 모은 것이다. 동인지문사륙은 신라시대 때부터 내려온 각종 변려문(騈儢文) 및 사륙문(四六文)을 모았다.
동인지문사륙은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15권 전권이 현존하고 있다. 동인지문오칠도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동인지문천백은 아쉽게도 현존하지 않고 있다.
1300년대에 만들어진 한국의 시문집으로 신라시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한국 시문학 및 서지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한국 역대 시문 작품의 총합 보고인 동문선에 미처 수록되지 못한 작품이 책 전체의 2/3가 넘어 역사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동인지문사륙과 동인지문오칠의 원문 및 번역문을 서비스하고 있다.
3. 외부 링크
4. 대한민국 보물
4.1. 제710-1호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 동인지문사육 권1~3, 4~6, 10~12, 13~15 (東人之文四六 卷一∼三, 四~六, 十~十二, 十三~十五)
- 두산백과 : 동인지문사륙(권1~6,10~15)
- 한국어 위키백과 : 동인지문사육 권1~3, 4~6, 10~12, 13~15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12권 4책.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가장 오래된 서적에 속한다.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권 1∼6, 권 10∼15으로 총 12권 4책이다. 이 밖에 고려 김태현의 『동국지감(東國之監)』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 책 권 5의 마지막 간행물에 나타난 고려시대 역대 왕의 휘호인 건(健), 무(武), 운(運), 요(堯), 치(治) 등의 글자는 획을 빠뜨리거나 대신 다른 글자를 쓰고 있는데, 이는 고려본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판본은 고려 공민왕 4년(1355)에 목판에 새겼으나 찍어낸 시기는 조선 전기인 것으로 보인다.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가장 오래된 서적에 속한다.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권 1∼6, 권 10∼15으로 총 12권 4책이다. 이 밖에 고려 김태현의 『동국지감(東國之監)』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 책 권 5의 마지막 간행물에 나타난 고려시대 역대 왕의 휘호인 건(健), 무(武), 운(運), 요(堯), 치(治) 등의 글자는 획을 빠뜨리거나 대신 다른 글자를 쓰고 있는데, 이는 고려본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판본은 고려 공민왕 4년(1355)에 목판에 새겼으나 찍어낸 시기는 조선 전기인 것으로 보인다.
4.2. 제710-2호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6권 2책.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권 1∼6의 총 6권 2책이다. 이 밖에 고려 김태현의 『동국지감(東國之監)』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 책 권 5의 마지막 간행물에 나타난 고려시대 역대 왕의 휘호인 건(健), 무(武), 운(運), 요(堯), 치(治) 등의 글자는 획을 빠뜨리거나 대신 다른 글자를 쓰고 있는데 이는 고려본의 공통된 특징이다. 권 1은 서문과 목차, 제1∼2장의 오른쪽 위 끝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다.
이 판본은 고려 공민왕 4년(1355)에 목판에 새겼으나 찍어낸 시기는 조선 전기인 것으로 보인다.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권 1∼6의 총 6권 2책이다. 이 밖에 고려 김태현의 『동국지감(東國之監)』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 책 권 5의 마지막 간행물에 나타난 고려시대 역대 왕의 휘호인 건(健), 무(武), 운(運), 요(堯), 치(治) 등의 글자는 획을 빠뜨리거나 대신 다른 글자를 쓰고 있는데 이는 고려본의 공통된 특징이다. 권 1은 서문과 목차, 제1∼2장의 오른쪽 위 끝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다.
이 판본은 고려 공민왕 4년(1355)에 목판에 새겼으나 찍어낸 시기는 조선 전기인 것으로 보인다.
4.3. 제710-3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3권 1책.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어쨌든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가장 오래된 서적에 속한다. 이 밖에 고려 김태현의 『동국지감(東國之監)』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글자획의 이지러짐과 마멸이 보물 제710호보다 약간 덜한 편이며, 간행하여 인쇄된 시기는 제710호보다 조금 앞선 때인 것으로 보인다.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어쨌든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가장 오래된 서적에 속한다. 이 밖에 고려 김태현의 『동국지감(東國之監)』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글자획의 이지러짐과 마멸이 보물 제710호보다 약간 덜한 편이며, 간행하여 인쇄된 시기는 제710호보다 조금 앞선 때인 것으로 보인다.
4.4. 제710-4호
(재)아단문고 소장. 3권 1책.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가장 오래된 서적에 속한다. 이 밖에 고려 김태현의 『동국지감(東國之監)』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동인지문사륙』권 13∼15를 간행한 것은 복주와 진주 두곳에서 이루어졌는데 고려대학교도서관 소장본(보물 제710호) 권 12와 권 15 끝을 보면 지정 15년(고려 공민왕 4년,1355)에 복주관(안동부의 옛 명칭)에서 발행한 기록이 표시되어 있다.
이 권 13∼15는 글자에 이그러진 부분과 닳아없어진 부분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려운 것도 있음을 감안하면 글자를 새긴 훨씬 뒤에 인쇄·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가장 오래된 서적에 속한다. 이 밖에 고려 김태현의 『동국지감(東國之監)』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동인지문사륙』권 13∼15를 간행한 것은 복주와 진주 두곳에서 이루어졌는데 고려대학교도서관 소장본(보물 제710호) 권 12와 권 15 끝을 보면 지정 15년(고려 공민왕 4년,1355)에 복주관(안동부의 옛 명칭)에서 발행한 기록이 표시되어 있다.
이 권 13∼15는 글자에 이그러진 부분과 닳아없어진 부분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려운 것도 있음을 감안하면 글자를 새긴 훨씬 뒤에 인쇄·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4.5. 제710-5호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3권 1책.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크기는 가로 19.7㎝, 세로 31.8㎝이며, 권 7의 마지막에『진주목개판』이라는 간기(刊記)가 명시되어 있어 그 간행지(刊行地)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졸고천백』과 이 책의 판식(板式)이 일치하며, 책을 조각하는 사람 이름이「정(正)」「고(高)」로 어미(魚尾)에 음각되어 있어, 정은 정연(正連), 고는 고청열(高淸烈)임을 바로 알 수 있고, 이것이『졸고천백』을 개판할 때에 같은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신라에서 고려에 이르는 출판형식, 목판의 조각기법, 문학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평가된다.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오칠」, 「천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륙」만이 남아있다.
이 책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문장을 모은 것으로, 크기는 가로 19.7㎝, 세로 31.8㎝이며, 권 7의 마지막에『진주목개판』이라는 간기(刊記)가 명시되어 있어 그 간행지(刊行地)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졸고천백』과 이 책의 판식(板式)이 일치하며, 책을 조각하는 사람 이름이「정(正)」「고(高)」로 어미(魚尾)에 음각되어 있어, 정은 정연(正連), 고는 고청열(高淸烈)임을 바로 알 수 있고, 이것이『졸고천백』을 개판할 때에 같은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신라에서 고려에 이르는 출판형식, 목판의 조각기법, 문학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평가된다.
4.6. 제710-6호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3권 1책.
동인지문사육-권7~9(東人之文四六-卷7~9)는 최해(崔瀣,1288∼1340) 선생이 펴낸 시문집인 『동인지문』가운데 사륙변려문만을 모아놓은 것으로 권7∼9의 1책이다.
고려 말기의 문신 최해는 신라 최치원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의 과거에도 급제하는 등 학문에 뛰어났다. 성격이 곧고 강직하였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는 책을 쓰는데 힘써 『동인지문』외에도 문집으로 『졸고천백』2책을 남겼다.
『동인지문』은 최해가 신라 최치원에서부터 고려 충렬왕 때까지의 역대 명현들의 시문을 엮은 것으로 그 가운데 시(詩)를 「오칠」, 문(文)을 「천백 」, 변려문을 「사륙」이라 이름하였다. 동인지문의 차례는 「오칠」, 「천백」, 「사륙」의 순으로 구성되었으며, 「오칠」 9권, 「천백」 1권, 「사륙」 15권으로 총 권수는 25권으로 되어 있다. 「사륙」에는 교서나 축문 등이 실려 있으며, 이 책은 제710-5호로 지정된 진주본과 같은 판본으로 영본(零本)이다.
현재 『동인지문』은 발견된 권수가 많지 않아 매우 희귀한 자료이다.
동인지문사육-권7~9(東人之文四六-卷7~9)는 최해(崔瀣,1288∼1340) 선생이 펴낸 시문집인 『동인지문』가운데 사륙변려문만을 모아놓은 것으로 권7∼9의 1책이다.
고려 말기의 문신 최해는 신라 최치원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의 과거에도 급제하는 등 학문에 뛰어났다. 성격이 곧고 강직하였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는 책을 쓰는데 힘써 『동인지문』외에도 문집으로 『졸고천백』2책을 남겼다.
『동인지문』은 최해가 신라 최치원에서부터 고려 충렬왕 때까지의 역대 명현들의 시문을 엮은 것으로 그 가운데 시(詩)를 「오칠」, 문(文)을 「천백 」, 변려문을 「사륙」이라 이름하였다. 동인지문의 차례는 「오칠」, 「천백」, 「사륙」의 순으로 구성되었으며, 「오칠」 9권, 「천백」 1권, 「사륙」 15권으로 총 권수는 25권으로 되어 있다. 「사륙」에는 교서나 축문 등이 실려 있으며, 이 책은 제710-5호로 지정된 진주본과 같은 판본으로 영본(零本)이다.
현재 『동인지문』은 발견된 권수가 많지 않아 매우 희귀한 자료이다.
4.7. 제1089호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3권 1책.
동인지문오칠은 고려말기 문신이었던 최해(崔瀣,1288∼1340) 선생이 고려시대 선비들의 뛰어난 시문을 뽑아서 펴낸 시선집인 『동인지문오칠』가운데 남아있는 권 7∼9이다.
최해는 최치원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의 과거에도 급제하는 등 학문에 뛰어났다. 성격이 곧고 강직하였고,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는 책을 쓰는데 힘써 『동인지문』외에도 문집으로 『졸고천백』2책을 남겼다.
『동인지문』은 최해의 『동인지문서(序)』에서 시를 「오칠」, 문을 「천백 」, 변려문을 「사육」이라 하고, 이를 총괄하여 그 제목을 『동인지문』이라 하였다. 동인지문의 차례는 「오칠」, 「천백」, 「사육」의 순으로 구성되었고 총 권수는 25권으로 되어 있다. 『동인지문오칠』은 신라 최치원으로부터 고려 충렬왕 때의 오한경, 홍간 등 시인들의 오언시와 칠언시를 선집하고, 비교와 해설을 붙여 고려말에 간행한 것이다.
이 『동인지문오칠』은 완질이 아니고 현재 남아있는 것도 전·후반부가 없어진 것이 있기는 하나, 『동인지문오칠』로는 처음 발견된 것이어서 「오칠」의 구성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고려판각본으로서 고려문인의 시가 수록되어있는 만큼 문헌학, 한문학 연구의 자료이며, 인물에 대한 전기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높이 평가된다.
동인지문오칠은 고려말기 문신이었던 최해(崔瀣,1288∼1340) 선생이 고려시대 선비들의 뛰어난 시문을 뽑아서 펴낸 시선집인 『동인지문오칠』가운데 남아있는 권 7∼9이다.
최해는 최치원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의 과거에도 급제하는 등 학문에 뛰어났다. 성격이 곧고 강직하였고,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는 책을 쓰는데 힘써 『동인지문』외에도 문집으로 『졸고천백』2책을 남겼다.
『동인지문』은 최해의 『동인지문서(序)』에서 시를 「오칠」, 문을 「천백 」, 변려문을 「사육」이라 하고, 이를 총괄하여 그 제목을 『동인지문』이라 하였다. 동인지문의 차례는 「오칠」, 「천백」, 「사육」의 순으로 구성되었고 총 권수는 25권으로 되어 있다. 『동인지문오칠』은 신라 최치원으로부터 고려 충렬왕 때의 오한경, 홍간 등 시인들의 오언시와 칠언시를 선집하고, 비교와 해설을 붙여 고려말에 간행한 것이다.
이 『동인지문오칠』은 완질이 아니고 현재 남아있는 것도 전·후반부가 없어진 것이 있기는 하나, 『동인지문오칠』로는 처음 발견된 것이어서 「오칠」의 구성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고려판각본으로서 고려문인의 시가 수록되어있는 만큼 문헌학, 한문학 연구의 자료이며, 인물에 대한 전기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