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color=#0065A4> 데저렛국 State of Deseret 𐐔𐐯𐑅𐐨𐑉𐐯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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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 | ||
| 1849년 ~ 1850년 | ||
| 위치 | 유타 | |
| 수도 | 솔트레이크시티 | |
| 정치체제 | 신권정치 | |
| 국가원수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의장 | |
| 역대 국가원수 | 브리검 영 (1849~1850) | |
| 언어 | 영어[1] | |
| 주요사건 | 1849년 건국 1850년 유타 준주에 합병 | |
| 통화 | 데저렛 달러[2] 모르몬 금화 가축(보조) | |
| 성립 이전 | 멕시코 제2연방공화국 | |
| 멸망 이후 | 유타 준주 | |
1. 개요
과거 서부개척시대 시기 지금의 유타주, 남부 캘리포니아와 그 인근 지역에 1년여간 짧게 존속했던 국가이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건립된 신권정치 국가였다. 데저렛이라는 말은 몰몬경에서 꿀벌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2. 역사
1844년 몰몬교의 1대 지도자 조셉 스미스의 사망 이후 신도들을 규합한 2대 지도자 브리검 영은 스미스의 유지에 따라 당시 멕시코 제2연방공화국 영토였던 로키산맥 서쪽으로 이동하는 대이주를 시작했다. 당시 브리검 영은 몰몬 교리를 바탕으로 한 독립 국가를 건설하여 미국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싶어했다. 마침 전년도인 1848년에는 미국-멕시코 전쟁이 종전되어 미국이 멕시코 제2연방공화국으로부터 새로운 땅을 잔뜩 뜯어내어 이민할 땅이 꽤 존재하던 상황이었다. 브리검 영은 정착지를 물색하던 중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에서 미국이 얻어낸 땅 중 하나였던 유타 지역에 정착지를 세우기로 한다.[3]1847년, 솔트레이크 분지에 닿은 몰몬교도 행렬은 '이 곳이 새 땅'이라고 선언하고 자치적인 종교 공동체를 건설하였다. 당시는 서부개척 및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얻어낸 땅을 자유주로 할 것인지, 노예주로 할 것인지를 두고 분쟁이 팽팽하던 시기였는데, 데저렛의 대부분은 농경에 부적합한 황무지나 다름없어 플랜테이션 농업이 주 목적인 노예제 문제로 인한 갈등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4]
솔트레이크 분지에 도착한 지 4일 만에 브리검 영에 의해 성전 위치가 시티 크릭의 두갈래길 사이 위치로 정해졌다. 신도들은 브리검 영의 지시를 따라 분지에 솔트레이크시티를 건설하기 시작, 분지 지역을 기준으로 주변 지역에 세를 넓혀가고 있었다. 브리검 영은 정착이 안정된 1849년부터 이 정착지를 데저렛이라 명명하게 된다. 그러나 존속 기간동안 미국 연방정부의 승인은 받지 못했다.
1850년, 자유주와 노예주 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벌어진 1850년 타협[5]이 있었다. 정식 주를 새로 편입할 경우 노예제 허용에 관련해 분쟁이 발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노예주 또는 자유주가 될지에 대한 제한이 없는 준주(Territory) 정부가 수립되곤 했었다. 이에 멕시코 할양으로 새로 뜯어낸 땅에 유타 준주와 뉴멕시코 준주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6] 이 신설된 유타 준주 지역에 데저렛 북부 구역 일부가 포함되었다. 노예 문제는 준주 주민들의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브리검 영은 1851년 2월 3일 유타 준주지사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851년 4월 4일 데저렛 총회가 데저렛국을 해체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데저렛국은 유타 준주에 공식 편입된다. 1851년 10월 4일 유타 준주 의회는 데저렛국의 법률과 조례를 재제정하기로 투표했다.
데저렛이 유타 준주로 연방에 편입된 이후로도 브리검 영은 한동안 준주지사이자 교회 지도자로써 종교와 정치 지도자 역할을 겸임했다. 유타 준주가 건립된 이후로도 몰몬교도들은 '데저렛국'이라는 개념은 포기하지 않았다. 1862년부터 1870년까지 브리검의 지도 아래 몰몬 장로단은 준주 의회의 매 회기 후 따로 만나서 데저렛국의 이름으로 새 법률을 비준하곤 했으며 1856년, 1862년, 1872년에는 데저렛국의 이름으로 새로운 주 헌법을 작성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유니온 퍼시픽이 등장한 이후부터 구 데저렛 지역에는 비몰몬 정착민들이 새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몰몬 중심의 국가 건설은 힘을 잃게 된다.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에 의해 몰몬교도가 아닌 준주지사가 선임됨에 따라 신정정치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1] 제한적이지만 자체 문자인 데저렛 알파벳이 문자로 사용되었다.[2] 데저렛 통화 연합(Deseret Currency Association)에서 발행#. 은행의 금 및 은 보유가 부족했기 때문에 주로 가축을 담보로 발행되었다.[3] 이는 골드러시 때문에 서부로 몰려들고 있었던 다른 개척자 집단과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서부시대 당시 개척지의 치안이란 그야말로 야생이나 다름없는 상태였고, 식별되지 않은 타 집단을 함부로 맞닥뜨렸다간 유혈사태만 늘어나기 쉽상이었다. 또한 1대 지도자 조셉 스미스 시절 몰몬교도들은 개신교도들은 물론 가톨릭에게도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온갖 박해를 받다가 암살당했으니 어떻게든 다른 집단과 부딪히지 않고 지낼 곳이 필요했다.[4] 실제로 당시 캔자스주는 노예제 찬성파 민병대 부시왜커(Bushwhacker)와 반대파 민병대 제이호커(Jayhawker)들이 서로 살육전까지 벌이는 이른바 '피 흘리는 캔자스'(Bleeding Kansas)라 불리는 사실상 내전 상황에 돌입해 있는 등 분규가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름 고민해 봐야 하는 요소였다. 이러한 노예주-자유주 간 갈등은 결국 연방정부에 반발한 남부 주들이 미연합국을 따로 만들어 갈라서려 하는 바람에 남북전쟁으로 번지게 된다.[5] 1850년 9월 미국 의회 에서 통과된 다섯 개의 개별 법안으로 이루어져 있다.[6] 이 둘은 나중에 정식 주로 승격된다.